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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Nov 01. 2023

이야기의 힘을 느끼고 싶다면

- 뮤지컬 <판>

인류가 동굴에서 생활하던 시절. 호기심 많은 아이가 부족의 경계를 넘어 먼 곳까지 가지 못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었을까? 단순하게 명령으로 금지하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안 된다!”


하지만 인간의 성품이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몰래 그곳에 갈 확률이 99퍼센트다. 그렇다면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그곳의 길은 한번 발을 디디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이며, 네가 그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게 불행이 찾아오지.


이 정도도 약하다. 뭔가 구체적이고 상상력이 자극되는 것일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다. 족장의 동생이 그곳으로 떠난 후 다시는 볼 수 없었다거나 곰과 호랑이와 뱀이 결합된 괴물 정도가 그 위를 날아다닌다고 하면 어떨까? 이 정도 되면 그저 호기심에 가보긴 어려워진다. 금지를 지속시키는 것은 이야기의 힘이다.




우리는 이야기가 가진 힘을 안다. 이야기는 임금을 당나귀 귀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있고, 옷을 몽땅 벗은 채 거리를 으스대며 걷는 멍청한 사람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임금의 권위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줄어들고 두려움의 농도는 흐려진다. 그러니 권력 있는 자들이 이야기를 두려워할 수밖에. 권력은 이야기를 견디지 못하고, 민중은 이야기를 찾는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이야기의 ‘판’이 깔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시대

저항하면 잡혀가는 위험한 시대


불이 켜지면 이야기꾼들이 몰려나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노래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답답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던가? 블랙리스트니 방송 금지니 하는 말은 되돌이표처럼 반복된다. 10.29 참사를 이야기로 만든 [Crush]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수입사의 의지일까 혹은 그보다 윗선의 마음일까? 모를 일이다.



때는 19세기말 조선. 서민들 사이에서 패관 소설이 유행하고,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이야기를 말로 전하는 ‘전기수’의 인기가 높아지자 권력은 이를 금지시킨다. 전기수들이 활동하는 이야기판을 폐쇄하고 소설을 모두 불태워버리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양반인 달수는 우연히 길에서 만나 반한 이덕을 쫓다가 그 판이 벌어지는 매설방을 가게 된다. 이야기에 매료된 달수는 명성이 자자한 전기수 호태에게 ‘낭독의 기술’을 전수받고 전기수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다.




이 뮤지컬은 2017년 초연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판이 깔리는 것이다.


19세기를 다룬다고 해서 국악이나 민요가 울려 퍼질 것이라고 상상하면 곤란하다. 일반적인 뮤지컬에서 만날 수 있는 넘버들이 흘러나오고 ‘내 가슴 쾌 하였도다’처럼 중독성 있는 노래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판이 벌어지는 현재를 풍자하는 이야기도 들어 있어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감이 극대화된다. 19세기 조선의 밤, 어두컴컴한 길을 지나 마침내 매설방에 도착하면 펼쳐졌을 것만 같은 광경이 그대로 눈앞에 재현되는 것이다. 웃음이 절로 난다.


이것 저것 보다보면 가끔 ‘왜 굳이 이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었지?’ 싶은 작품들을 만난다. 노래가 들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줄거리가 엉성해지기 때문이다. 설명을 해줘야 이해할 수 있는 뮤지컬은  난감하다. 노래가 매우 아름답다면 또 그러려니 하지만 그것도 아니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공연이 끝난 후 입가에 맴도는 멜로디 하나 없어서는 낭패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뮤지컬은 반드시 뮤지컬이었어야 했다. 노래가 빠지면 성립되기 힘든 작품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이야기에 뮤지컬의 흥이 더해진다. 뮤지컬답다.




능글능글한 전기수 역할의 김지훈 배우와 어쩐지 중2병을 앓고 있는 듯한 달수 역의 문성일 배우도 멋졌지만 모든 판을 주도하는 춘섬 역의 김국희 배우에게 빠져 버렸다. 뭐랄까. 나도 쾌 하였다.


이 뮤지컬처럼 재연될 때마다 시류를 반영해 주면 어쩔 수 없이 때마다 무대를 찾게 된다. 밤이면 매설방을 찾는 규방 처자처럼 어둠이 내리고 주위의 눈이 뜸해지기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혹시 어제 나온 전기수는 오늘 내가 본 전기수보다 훨씬 잘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았을지 안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들이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는 것은 어떨까? 이 뮤지컬은 11월 26일까지 대학로 TOM 1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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