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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Dec 06. 2023

당신은 누구입니까?

- 연극 [너 자신이 되라]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시선을 붙드는 것은 쌓여 있는 락스들이다. 그렇지. 오늘 극장 안쪽에서는 락스 회사의 면접이 진행될 것이다. 입구를 지나자 무대 안쪽에 자리한 6*6의 작은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네모난 패널이 보인다. 각각의 작은 사각형 안에 역시 락스 통들이 배치되어 있다. 삼각형의 커다란 거울과 모양은 같지만 크기가 작은 거울이 옆에 자리하고 있다. 거울 위에는 그리스 문자로 “너 자신을 알라”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고 극 중 인물인 면접관이 나중에 설명해 주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를 가장 현명한 인물이라고 신탁한 델포이 신전 기둥에 새겨져 있었다는 말이다. 무대는 락스 회사의 면접장이고,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가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나 자신을 아는 사람’을 뽑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인문학 교수를 뽑는 것도 아니고 락스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부서 직원을 뽑는 자리에 쓰여 있을 만한 문구가 맞나 싶긴 하지만, 뭐 내가 사장은 아니니까.




불이 켜지면 무대 왼쪽에 앉은 사람이 입을 연다. 붉은 정장에 붉은 구두, 손톱까지 붉게 칠하고 은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깡마른 면접관이다. 락스 그리고 락스에 관한 열정을 고백한다. 마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보스 ‘미란다’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다.


면접관의 질문에 무대 오른쪽, 흰색 세미 정장에 분홍 운동화를 신고 앉아 있던 여성이 입을 연다. 면접을 보기 위해 온 사람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젊은 여성은 떨리는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연습했던 말들을 쏟아낸다. 학력과 직업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 자신의 장점을 또렷한 말투로 어필한다.


젊은 여성의 말을 들으며 면접관이 검은 선글라스를 낀다. 극이 시작할 때는 분명 관객을 바라보며 명료하게 대사를 말하던 면접관은 면접을 보러 온 사람에게 자신이 시각 장애인이라고 주장한다. 면접관이 시각 장애인이라고 하면 시각 장애인인 것이다. 면접관은 눈이 보이지 않으니 촉감으로 알아내야 한다며 젊은 여성의 얼굴을, 몸을, 만지고 싶은 모든 곳을 쓰다듬는다. 이렇게 면접이 시작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태어나 보니 죽을 때까지 쓸 넉넉한 돈이 있는 사람도 존재하겠지. 그런 사람들은 면접관 앞에 설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런 아주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 붉은 정장을 입고 시각 장애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 앞에 무방비 상태로 설 일이 생겨 버리는 것이다.


면접관은 면접을 보기 위해 회사를 찾아온 젊은 여성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거듭 묻는다. 회사에 들어가면 파워 포인트를 조금 하고 전화를 받는 대가로 월급을 줄 것이 뻔한데 “너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이고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것은 등가의 교환이 아니다. 면접에 필요한 질문은 ‘그 일에 맞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내지는 ‘그 일을 할 만한 역량이 있는지’이지 너의 본능부터 내면까지 드러내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비밀스럽고 내밀한 속사정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면접관과 면접을 받는 사람의 위치는 공평하지 않은 질문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개똥 같은 질문을 받고서도 면접관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떤 대답을 원하는 것인지 추측하고 어림잡고 고민한다. 돈이 모든 것 위에 놓인 진정한 자본주의적인 모습이다.


면접관의 요구는 점점 더 종잡을 수 없이 되고 마침내 젊은 여성은 더 이상 면접을 진행할 수 없다고 선포한다. 이럴 때 마법처럼 나오는 한 마디.


막 결정하려고 했는데….. 정말 마지막으로 결정을 하려던 참이었어요. 좋아요, 그렇다면 다른 후보를 찾아볼게요.

면접을 보면서 지금까지 느꼈던 분노와 수모를 이런 식으로 끝낼 수는 없다. 젊은 여성은 마침내 입술을 꽉 깨문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극작가 콤므 드 벨시즈(Come de bellescize)가 2017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프랑스 문화원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극이 시작하기 전 프랑스어로 된 안내 방송과 프랑스어 자막이 제공됐다.


설마 프랑스에 이런 식의 면접이 진행될 리는 없다. 사람 사는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곤란하다. 말하자면 이 면접은 일종의 은유일 것이다(극 중 ‘이건 일종의 은유예요. 메타포’라는 대사가 흘러나왔다). 면접관과 면접을 봐야 하는 자, 권력이 있는 자와 그 아래 소속된 사람, 힘이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이들의 관계는 시종일관 불평등하고 불공평하고 비정상적이다. 95분의 시간 동안 그 부분을 명료하게 깨닫게 된다.




면접관 역의 전국향 배우는 딱 화면 밖으로 튀어나온 메릴 스트립 같았다. 표독스럽고 이상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면접에 임하는 젊은 여성의 역할을 맡은 김보나 배우는 늘 봐도 사랑스럽다. 어떤 역할도 김보나 배우를 거치면 귀엽고 약간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이런 대비 덕분에 면접관의 무자비함이 확실히 드러났다.


극의 마지막 부분 면접관에게 내내 끌려가던 면접의 주도권이 젊은 여성에게 넘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녀는 면접 내내 억눌려 있던 분노를 표출하고 욕망을 발산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자리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문제는 그 과정이 몹시 프랑스적이다. 어떤 것이 구체적으로 프랑스적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우리의 상식에서 좀 떨어져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뿐이니까. 두 사람의 위치를 역전시키기 위해 사용할만한 장치가 성적인 것밖에 없었을까? 모를 일이다.


면접관과 젊은 여성의 어울림이 이 면접을 조금 더 현실감 있게 만들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고 있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아도 눈을 질끈 감고 일해야 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꼭 면접이 아니더라도. 그럼 도대체 면접에서 어느 정도 일이 벌어진 거야? 궁금한 분들은 직접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시기 바란다. 이 연극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12월 10일까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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