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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Dec 07. 2023

욕망과 탐욕의 돌림노래

- 뮤지컬 [맥베스]

나무로 된 간결한 무대다. 무대 양쪽으로 피 묻은 칼이 그려진 휘장이 걸려 있고 앞쪽에는 칼이 펜스처럼 둘러있다. 무대 정면에는 의자가 두 개. 한 의자에 왕관이 있다. 불이 꺼지기도 전 한 무리의 앙상블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요정처럼 보이기도, 정령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화는 없다. 합을 맞춘 듯 동작과 춤을 선보인다. 관객의 시선을 빼앗는 강렬한 오프닝이다. 이윽고 누군가 왕관을 들어 올린다. 한줄기 빛이 환하게 왕관을 비춘다. 암전.




뮤지컬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비슷한 이야기의 전개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비슷한 것은 인물들의 이름 정도. 게다가 원작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들도 있다. 이 정도면 원작과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해도 될 법하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멕베스 장군에게 낚싯줄을 던지는 것은 마녀들이다. 극 초반, 멕베스 장군은 딱히 반역의 역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단지 마녀의 예언에 마음이 흔들렸을 뿐이다. 생각지 않은 엄청난 자리가 멋대로 주어진다면 거부할 수 없지, 하는 정도의 마음이었다.


흔들린 마음을 먼 곳까지 밀어 버린 것은 멕베스의 부인이다. 맥베스의 부인은 좋게 말하면 추진력 있게 나쁘게 말하면 권력욕에 타올라 남편을 몰아붙인다. 옛날 사람인 셰익스피어는 모든 악행의 원인을 여자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마녀들과 아내의 말이 멍청했던 악했든 간에 실행에 옮긴 것은 남자인 맥베스다. 누구 탓을 할 일도 아니다. 아무튼 이런 까닭에 원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맥베스]라는 제목을 듣자마자 마녀들을 떠올린다. 트레이드 마크 같은 것이 되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뮤지컬 [맥베스]에 마녀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헛된 예언으로 마음을 들뜨게 하는 장치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멕베스 장군이 역심을 품게 만든 원인을 만들어 줘야 한다.


뮤지컬은 던컨왕이 맥베스에게 물려주기로 한 왕의 자리를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주면서 불행의 씨앗이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젖먹이 아이를 잃은 맥베스 부인의 슬픔은 분노를 강화한다. 이렇게 맥베스와 그의 부인 버니의 마음은 던컨 왕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일념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일이 시작된다.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인물은 17명이다. 주인공 맥베스와 맥버니는 하나의 역할만 수행한다. 15명의 등장인물은 코러스로 또한 덩컨왕이나 레녹스 영주, 뱅쿼와 같은 개별 인물로도 등장한다. 문제는 15명의 코러스가 거의 같은 복장이라는 사실이다. 맥베스가 세 명의 인물에 둘러 싸여 고뇌할 때 그 인물들이 ‘젊은 맥베스’와 ‘맥베스의 아버지’와 ‘맥베스의 아들’ 임을 알려주는 방법은 놀랍게도 의상도 말투도 아닌 자막이다.


무대 밖에는 등장인물의 이름과 노래 가사가 자막으로 제공된다. 당황스럽다. 방금까지 시종으로 칼을 휘두르다 돌아서서 아버지의 유령이 되어버리면 관객입장에서는 난감하다. 관객의 눈은 인물에 집중하지 못한 채 무대와 자막을 바쁘게 옮겨 다녀야 한다. 미처 노래에 빠질 겨를이 없다.




옛날 사람인 셰익스피어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이 뮤지컬에서 복수의 칼을 든 것은 왕자인 맬컴과 도날베인이 아닌 딸 메리다. 시도는 괜찮았다. 원작을 이렇게 저렇게 흔들어 보는 것이 각색의 매력이니까. 하지만 맥더프와의 관계는 다시 설정해도 좋지 않았을까?


원작[맥베스]에서 맥더프는 맥베스에게 자신의 가족을 도륙당한다. 복수의 칼을 품을 수밖에 없다. 뮤지컬에서는 그 부분이 빠져 있다. 덕분에 극의 결말은 탐욕과 정의로운 복수가 아닌 탐욕과 또다시 반복되는 탐욕으로 바뀐다. 이것도 좋다. 결말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각색하는 창작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복수의 순간에 칼 한 번도 휘두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다 이미 무릎 꿇은 맥베스를 내리치는 역할의 메리라니, 이건 아무리 봐도 너무 수동적이고 어설프다.




원작을 색다르게 해석하려 한 제작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의도는 괜찮았다. 의도는 관객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의도가 좋았다고 모든 것이 좋지는 않다. 좀 더 다듬으면 다음번에는 더 좋은 무대가 되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음악은 강렬하고 어둡다. 복수와 갈등의 메아리가 계속되는 셈이니 밝고 신날 수는 없다. 맥버니 역의 이아름솔 배우의 노래는 듣는 이의 숨이 멎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다만 아름다운 선율이었던 것은 알겠는데 뒤돌아 기억나는 부분이 없다. 딱 한 뼘이 부족하다.


조명과 의상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게다가 오프닝은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이 뮤지컬을 쓴 김은성 작가의 전작인 연극 [빵야]를 몹시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재연 무대를 기다린다. 이 뮤지컬은 아무튼 더 나아질 많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 기대해 본다. 제 돈 주고 관람한 관객으로 이 정도의 투덜거림은 제작진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개인적인 저의 투덜거림의 이유를 알고 싶은 분들은 12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를 찾으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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