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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Dec 09. 2023

마음의 기쁨이 되는 곳, 딜쿠샤

- 뮤지컬 [딜쿠샤]

언젠가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딜쿠샤'라는 곳을 방문하는 예능프로그램을 봤다. 집의 이름이 '딜쿠샤'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집이나 서원에 이름이 붙은 경우는 많았지만 요즘은 드물다. 특색 없이 비슷하게 생긴 아파트 공화국에 사는 국민으로서 아무래도 집에 애칭을 붙일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에 있다는 집 '딜쿠샤'는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 미국의 기업인 겸 언론인 알버트 테일러와 영국의 배우이자 화가였던 메리 테일러가 지은 집이다. 그러니까 딜쿠샤의 나이는 2023년 현재 101살이다.




알버트 테일러는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무역업을 하면서 동시에 UPI 서울 특파원을 겸임했던 인물이다. 3.1 운동에 대한 소식을 전 세계로 타전한 인물도 알버트다. 이후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취재하고 독립운동에도 협조하다 태평양전쟁 직후 추방당했다. 미국인 알버트와 영국인 메리는 일본에서 만나 인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본 아름다운 궁전 딜쿠샤(DILKUSHA)의 이름을 따와 자신들의 집에 붙였다.


티브이를 보며 서울 한복판, 그것도 늘 지나다니던 사직터널 근처에 저런 서양식 주택이 있다는데 나는 왜 몰랐지?라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동시에 독립운동 후손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독립에 관여한 외국인의 집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딜쿠샤]라는 뮤지컬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이야기로 2시간을 채울지 궁금했다. 타국의 독립운동을 돕던 외국인의 이야기일까? 특정 시간의 역사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하면 가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극장을 찾았다.




극장에 들어서자 무대 안쪽에 단차를 두어 2층으로 만든 무대가 보였다. 무대 양편에 작은 책상이 하나씩, 그 사이로 특색 없는 의자들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뮤지컬 무대로서는 특이하게 무대 중앙이 연주팀의 자리였다. 극이 시작되기 전 다섯 명의 연주자가 소리 없이 걸어 나와 자리를 잡았다. 이어서 배우들이 무대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연주자들의 모습이 똑똑히 보이는 까닭에 무대는 뮤지컬처럼 이따금은 콘서트처럼 보이기도 했다.


딜쿠샤는 1923년에 지어지지만 이야기는 더 예전으로 거슬러 알버트와 메리 부부가 딜쿠샤를 짓기로 마음먹은 시점까지 올라간다. 커다란 은행나무 바로 앞에 자리 잡은 딜쿠샤는 많은 손님이 오가는 곳이었다.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 품삯을 받고 딜쿠샤의 일을 돕는다.


나라도 없고 집도 없는.......


빨래 바구니를 든 아낙들이 이렇게 노래한다. 이 뮤지컬을 이끌고 가는 두 축 중 하나인 금자 씨의 어머니도 이들 중 하나였다. 어린 금자는 딜쿠샤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간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금자의 집 사정으로 볼 때 어쩌면 당연한 소망이다.




알버트와 메리 부부가 추방당하고, 전쟁을 겪고, 산업화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 금자는 딜쿠샤에 살았다. 다큐멘터리 감독에 의해 딜쿠샤의 이야기가 알려지며 알버트와 메리부부의 아들인 브루스와 연락이 됐다. 이 뮤지컬은 이제 나이를 먹은 브루스 씨와 금자 씨가 주고받는 편지를 뼈대로 하여  이야기를 구성한다.


금자 씨가 예전의 일- 딜쿠샤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집의 주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 을 물으면 브루스 씨가 대답을 하고 브루스 씨가 지금의 일 -딜쿠샤는 무너지지 않았는지, 누군가 그곳에 아직도 살고 있는지 -를 물으면 금자 씨가 대답을 하는 형식이다. 무려 100년에 걸친 한국사가 고스란히 이들의 편지 안에 녹아 있다.


1919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현대사를 밝고 맑게만 그릴 도리가 없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 등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만 한가득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금자 씨가 있다.

나라도 없고 집도 없지만 내게는 파란 하늘이 있어

라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금자 씨다. 한없이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상큼하고 즐겁게 들어 올린다.




테일러 부부가 추방당한 후 비어버린 집에는 여러 사람이 들며 난다. 실제로 2017년 딜쿠샤가 대한민국 국가 등록 문화재로 지정될 때에도 12세대가 거주하고 있었다. 하나의 화장실을 나누어 쓰고, 거실을 몇 개로 쪼개어 사용하면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이 집에 의지했다. 뮤지컬에서는 넝마를 줍는 사람, 미군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 전직 군인 등 힘든 사람들이 금자 씨와 함께 이 집에 거주한다.  


문득 무대 중앙에 연주자들을 배치한 이유가 떠올랐다. 한 집을 여러 세대가 쪼개 살던 딜쿠샤처럼 이 무대만큼은 배우에게도 연주자들에게도 공평하게 나누자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은섬배우는 정말 살아있는 금자씨 같았다. 동네 할머니 같기도 하고 귀여운 꼬마 같기도 했다. 뮤지컬의 분위기를 쥐락펴락했다. 노래들은 아름답고 가슴이 떨리게 만든다. 아리랑과 일제 강점기 희망가의 곡조와 함께 불려지는 노래는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런가 하면 현재를 씩씩하게 살아가는 금자 씨를 보며 웃음이 터지고 박수를 치게 된다.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뮤지컬이다. 20살에 집을 떠나 다시는 딜쿠샤로 돌아오지 못한 브루스는 이렇게 노래한다.


봄이 되면 복숭아꽃 향기가 코를 찌르고 노란 은행잎이 가을을 알려주던


이제는 복숭아나무도 없고 향기도 사라졌지만 은행나무와 딜쿠샤는 남았다. 예능프로를 통해 이 집을 소개받고도 아직 딜쿠샤를 방문하지 못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알버트와 메리가 가꾸던 그곳에 방문해 봐야겠다. 100년이 넘은 집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한 분들은 12월 30일까지 국립 정동극장을 찾으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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