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안주 그리고 시간
2024년 여름, 그중 가장 뜨겁던 8월에 나는 맥주를 만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맥주를 만드는 3인 중 하나였다. 우리는 매주 모여 맥아를 끓이고, 거르고, 식히고, 부재료를 넣는 과정을 거치며 26리터의 맥주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꽉 채운 1리터 병 15-16개를 나눠 가졌다. 후발효와 숙성은 각자의 몫이었다. 장소는 한국 맥주 교육원.
맥주를 처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십수 년 전에 맥주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맥아를 끓이는 대신 맥아추출물을 사용했다. 맥주를 만들 때 맥아와 맥아추출물을 사용하는 것의 차이는 쌀로 밥을 짓는 것과 햇반을 데우는 차이와 비슷하다. 맥아추출물을 이용해 맥주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한 번에 만들어야 하는 최소 용량이 있다는 점은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혼자서 마셔야 얼마나 마신다고. 나는 그렇게 홈메이드 맥주를 포기했다.
쌀과 누룩으로 뭔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맥주의 세계를 다시 넘겨다보게 되었다. 쌀이나 맥아나 다 같은 곡류다. 맥주에 첨가할 수 있는 부재료는 막걸리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효모’의 문제를 마주하면 학구열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자연의 힘으로 만든 ‘누룩’을 주로 사용하는 막걸리와는 달리 맥주는 이미 선별되고 정제된 효모 리스트를 갖고 있다. 물론 ‘누룩’에도 입국이나 개량 누룩처럼 분리된 조건에서 선별된 효모가 있긴 하다. 그러나 맥주의 효모 리스트와 수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뭔가 배울 것이 있지 않을까? 호기심과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학구열이 나를 한여름의 맥주 아카데미로 이끌었다.
맥아를 끓이는 사이, 맥아를 여과하거나 식히는 사이 스승 Fat Pig는 세계 각국의 맥주를 내놓았다. 도대체 이런 맥주들은 어디서 파는 것들이람? 우리는 독일과 영국, 벨기에, 포터와 람빅, 에일 등등 출신지와 종류를 달리 한 맥주들을 마셨다. 대략 1병에 만원 내외하는 맥주를 5-6병씩 마시고 가니 수강료는 이미 뽑은 것이라고 수강생 누군가 농담을 해도 스승은 웃기만 했다. 술 만드는 사람은 술을 아끼면 안 된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통과하는 문장이었던가보다
그리고 소개받은 우리나라 소규모 양조장들의 맥주들. 음. 서울에서는 구하기 힘든 부산, 안동, 속초 같은 지방의 맥주들을 꿀꺽거렸다. 인터넷뿐 아니라 구독 서비스도 가능한 전통주와는 달리 맥주 양조장들은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그 맛을 알기 힘들다. 물론 캔에 포장된 것과 갓 만든 맥주를 탭으로 뽑아주는 것도 맛이 다르다. 아이고야. 그러면 가서 마시는 방법밖에 없는 거야? 응?
무릇 수제의 전성시대다. 술에 빠진 양조사들은 내려오는 방법을 습득하고 그 안에 특이한 비법들을 덧댄다. 그리하여 새롭고 신선한 술들이 생겨난다. 어차피 마시는 술이라면 좀 더 공력이 녹아 있는 공간에서 즐겨보는 것도 좋지 아니할까? 초급 맥주 수업을 끝내고 중급 수업을 준비하며 슬슬 새로운 술이 있는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그 여정이 지금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