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조언
치과에 갔다.
왼쪽 아래 어금니 쪽에서 짧지만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찰나 같은 순간이 지난 뒤 이곳저곳을 두들겨 보아도 어떤 이가 문제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다 아픈 것 같기도 하고 특별히 한 개가 더 시린 것도 같았지만, 다시 두들기면 아닌 듯도 싶었다. 자다가 남의 다리를 두드리는 것 같은 막연함 뒤에는 어김없이 찌릿한 통증이 찾아왔다.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예약을 했다. 전문가가 어련히 알아서 해 줄 문제였다. 몸의 문제는 커지기 전에 해결하는 것이 좋다, 는 것이 내 지론이다. 아파봐야 간호는커녕 투덜거릴 사람조차 없다. 일이 커지고 큰 병원에 가봤자 보호자를 찾는 물음에 마음만 상할 뿐이다.
엑스레이를 찍고, 사진과 마주 앉았다. 이곳저곳 땜질된 부분과 덧씌운 것들이 흉물스럽게 보였다. 의사는 가장 문제인 부분은 이곳과 저곳과 요곳이라고, 펜으로 집어가며 설명했다. 아픈 것은 왼쪽 어금니였는데, 당장 치료가 급하다는 진단이 나온 것들은 윗니이거나 오른쪽 어금니였다. 이를 이 지경까지 내버려둔 것은 방치한 것에 가깝다는 의사의 말에 한껏 주눅이 들었다.
“신경이 다들 이어져 있으니까요.”
겨우겨우 열의 없는 목소리로 ‘내가 아픈 쪽은 왼쪽 아래’라고 주장했지만, 마스크 때문인지 원래 목소리가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는 의사는 웅얼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치료가 시작되고 두 번에 걸쳐 대금을 지불했다. 의료보험처리가 되는 제품으로 시술하기로 했지만 착오가 생기는 바람에(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원래 내기로 한 금액의 두 배를 결제했다. 마음은 상했지만 어쨌거나 더 심한 지경까지 가지 않은 것에 만족하고(원래 이런 쪽으로는 마음을 잘 다잡는다) 병원을 나섰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다른 치과를 찾았다. 이번에는 정확히 왼쪽 두 번째 이가 아프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처음 찾아갔던 치과에서 당했던 구구절절한 사정도 물론 길게 늘어놓았다. 비교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의사는 신중하게 말을 고르며 설명했다.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죠.”
처음 치과에서 엑스레이 한 장만 찍었던 것과는 달리 3D와 또 다른 이름의 촬영까지 덧붙여졌다. 두드리고 얼음을 대고, 다시 두드리고를 반복하던 의사가 최후통첩을 했다.
“살릴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까우니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지요.”
찢어질 듯 입을 벌린 상태로 멍하게 의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고.....’의 다른 버전쯤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노련한 의사는 이미 얼굴의 오분의 삼 정도를 마스크로 감추고 있어서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갓 들어온 고양이에게 새 집을 빼앗긴 댕댕이 같은 표정으로 쳐다보는 내 시선을 피하며 그가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신경치료를 할 겁니다. 그리고 구멍이 난 부분은 이런 식으로 덧씌웁니다. 그런데 그때 이가 견디지 못하고 금이 간다거나 하면 뽑아내야 합니다. 물론 그전에 잇몸치료가 먼저입니다.”
잇몸치료는 그렇다 치고, 신경치료와 덧씌우기까지 끝낸 후에야 뽑아낼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초기 치료에도 최저시급 열흘 치 정도가 필요했다. 발치를 하게 된다면 거기에 몇 달치가 더 청구되는 모양새였다.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70퍼센트 정도는 처음 치료가 성공합니다.”
뭔가 더 물어보려 하자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떴고, 곧이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의 간호사가 말없이 잇몸치료를 시작했다.
스케일링 기구들이 입 안을 활보하는 것을 느끼며 무기력한 모양새로 누워있었다. 힘을 빼라는 말이 들렸지만, 주먹은 꼭 쥐어져 있었고, 발가락 끝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꼬물거렸다.
두 달 전 막연한 아픔을 느꼈을 때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입 속 이곳저곳을 두드려야 했을까? 혹은 그 당시 바로 다른 병원을 찾았어야 했을까?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리라는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고,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날 정도의 통증이 지속되었다.
“반대편으로 살짝 돌리실게요.”
움찔거리는 내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유쾌한 목소리가 말했다. 이를 빼야 하는 극한 상황에 도달할 때가 되어서야 무엇이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명확하지 못한 처방을 들었다. '상태가 악화되어 왔기 때문에 신경치료와 발치 가능성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의사의 말이 더욱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처음 갔던 병원에서 전문가의 의견이라고 넙죽 받아들이지 않고, ‘내 문제는 이것이다’라고 주장했다면 기회가 한 번은 더 오지 않았을까?
스케일링을 끝낸 뒤 양치를 하고 눕자, 이번에는 신경치료를 위한 마취 주사가 잇몸을 파고들었다. 신음소리를 참고 있는 내게 의사는 ‘따끔해요’를 속삭였다. 따끔? 이게 따끔이면 나는 네 할머니다.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고도 30여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부어오른 왼쪽 볼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잠복하고 있을까? 통증으로, 울음으로, 소화불량으로, 급작스러운 분노 조절장애로 터져 나올 많은 문제의 원인을 과연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 분명히 나 스스로 곱씹어 보고 이리저리 두들겨서 찾아내야 하는 원인임에도 요행히 아무 일 없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혹시 어떤 전문가가 치료해주기를 헛되이 희망하며 내팽겨 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덕 중간에서 걸음을 멈춘 채 씨근거렸다.
질문은 맞게 던진 것 같은데 제대로 된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래서 똥 멍청이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래저래 내가 제일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