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 넘게 사셨던 공자는 마흔이 되자 미혹되지 않으셨다고 한다. 오십이 얼마 남지 않은 내 처지에서 말하자면, 불혹은 개뿔.
슬슬 삐걱거리는 몸을 위해 처음으로 귀한 내 돈으로 살 영양제를 친구와 함께 고르며 공자님 생각을 했다.
‘종합 영양제가 좋아? 어떤 성분이 들어가야 하는 데? 비타민 뭐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B? K?’
‘이소플라본? 그게 좋은 거야? 세상 처음 들어봐.’
‘오메가 3? 그건 뭔데? 상어 지느러미 자르는 다큐멘터리 본 것 같은데, 그건 싫어. 아니야? 이건 딴 거야?’
불혹은커녕 약어와 성분에 미혹되어 한참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헤엄치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영양제뿐 아니다. 예를 들면 다이어트. 옷을 살 것이냐, 살을 뺄 것이냐는 갈림길에 설 때마다 선택은 다이어트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소리지만, 결심할 때마다 성공했으면 지금쯤 안젤리나 졸리가 부럽지 않은 몸매의 소유자일 것이다.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그다음 하는 ‘짓’은 ‘뭘 먹을지’를 찾는 것이다. 머리로는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살이 빠진다’가 진리임 알고 있으나 손가락은 ‘단백질로 승부하는 다이어트’, ‘기억의 다이어트 식사’ ‘레몬 디톡스’ 같은 것을 쫓아다니고 있다. 그걸 검색하고 있는 내 입에서 마저 ‘그만 좀 먹으라고’ 같은 소리가 나온다. 점점 못 입는 옷이 늘어난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바라보는 지금, 40의 허들도 아직이지만, 월반하는 심정으로 다음 장애물은 살짝 비켜갈 수도 있지 않을까 기웃거리게 된다. 가만히 있어도 나이를 먹을 수밖에 없으니 갖은 잔꾀를 내보는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그걸 아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5년 동안 닥터헬기 일을 했다. 맞다. 카랑카랑하게 생긴 이국종 교수가 부르짖는 그 의료용 헬기. 10년 전쯤 도입된 후, 멀쩡히 잘 자던 헬기가 부서지는 사고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야간에도 운항하는 헬기를 이국종 교수가 있는 병원에서는 운영할 예정이라는데, 지금까지는 일출부터 일몰까지만 움직인다.
그 헬기라는 것이 좁다. 원래도 넓지 않은 내부에 의료진, 환자 타고 의료장비 장착하고 나면 상당히 좁다. 의료장비라는 것도 붕대, 약통 이런 간단한 것이 아니라(그런 것도 있겠으나), 진단이 가능하도록 전자 기계들이 가득하다. 평소에는 충전 문제도 있고 해서 빼놨다가 출동할 때 들고 가기도 하는데, 덕분에 호출 때의 의료진들은 십몇 킬로의 짐을 든 채 허우적허우적 헬기에 오르곤 한다. 환자가 탑승하고 나서도 지혈이라든가 의료기구를 부착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사투를 벌이다 내리기 일쑤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의사였는데, 그날이 그의 첫 근무였다. 더운 여름이었는데, 그런 날씨에는 돈을 준다 해도 헬기 탑승은 사양하고 싶어 진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한낮(당신이 상상하는 어느 여름날이라도 좋다)에 밖에 충분히 서 있던 자동차에 느닷없이 올라타서 출발하는 느낌. 차 내부의 온도는 에어컨으로 조절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숨 좀 쉴 정도가 되긴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처럼 이 바닥에도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첫 임무 날은 무조건 출동이 많으리라는 저주 비슷한 것이다.
점심때도 지난 오후, 낯을 많이 가리는 의사선생은 이미 두 번의 출동을 한 후였다. 환자를 이송하고 나면 응급실에서의 진료까지 본인 손으로 해야 하는지라, 점심밥은 꿈도 못 꾸고 지나간 다음이었다. 잔뜩 지쳐서 대기실로 들어왔기에 간식이라도 드셔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두 번 다 멀미를 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지막 호출은 아슬아슬하게 운항이 가능한 시간에 들어왔다. 일몰 직전 환자가 도착했고, CCTV를 통해 환자를 이동 베드에 눕힌 채 뛰어가는 뒷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첫날이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돌아왔다. 서류 정리를 끝내야 퇴근을 할 수 있는 입장인지라 나는 그가 들어왔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나 역시 열다섯 시간쯤 근무 중이었고, 퇴근 시간은 이미 몇 십분 지나있었다.
“전 이 직업이 좋습니다.”
돌아보니 그는 벽에 머리를 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은 출동 전보다 더 창백해서, 본인이 먼저 응급실에 누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지경이었다.
“주사가 딱 한 대 필요한 분이었어요. 어렵지도 않고 복잡한 처치도 아니지만, 정확히 그때 그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분이었어요.”
환자는 심장에 문제가 발생한 50대의 남자였다. 내 직함을 부르고 말했으니 나에게 하는 말이었겠으나,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고 있어서 집중하지 않으면 잘 알아듣기 힘들었다. 평소였다면 ‘이봐요, 선생님. 처음 하는 대화인데 크게 좀 말해 봐요.’라고 했을 테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나는 그가 말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가운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이마에 올려놓은 손은 살살 떨리고 있었다.
“나 때문은 아니지만 환자는 살았어요. 전 이 직업이 너무 좋아요.”
얼굴색이 좋지 못해서 혹시 유언 같은 것인가 걱정됐으나, 몇 분 정도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던 의사는 인사도 없이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가 버렸다.
인생에서 자의로 선택한 것은 얼마나 될까. 부모, 시대, 환경, 생김새 어느 것도 내가 선택한 것은 없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한, 그 한계 내에서 어떻게든 삶을 꾸려가게 된다. 원래의 내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란 그리 넓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틈을 비비고 몸을 꿈틀거려서 기어이 행복을 찾고 삶의 목적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천명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후 우리는 ‘근무 시간에 비해 너무 박봉인 월급’과 ‘그래도 교수님이 나보다 몇 배를 더 버는 줄 알고는 있느냐’는 힐난과 ‘그런 식으로 말하면 커피를 사드리겠다’ 같은 말들을 나누며 근무를 이어갔다. 계속 무거운 의료장비를 메고 뛰어다니고, 밥을 먹다 내팽개치는 일이 반복되었지만 그런 것이 삶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