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동네 뒷산 정도로 쌓여 있던 휴가를 산 중턱까지는 없애고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일주일 전 그 말을 들었고, 갑자기 한 달 반 휴가가 던져졌다.
직장인이 회사를 안 가면 마냥 좋긴 하다. 그러나 연차가 쌓여 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못 쉬었다는 말이다. 5년 동안 쉬지 못한 휴가가 산이 되어 있었다. 그런 피 같고 소중한 연차가 사전 계획을 짤 시간도 없이 덜컥 주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낙담하거나 좌절해서 아무 계획도 못 잡아서야 이십 년 차 직장인이 아니다. 장기 휴가엔 무조건 먼 곳이다. 그리하여 멕시코를 흘끔 대기 시작했다.
신혼여행지로 급부상 중인 ‘칸쿤’에 대해서는 한정적이지만 정보가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멕시코 전체에 대한 여행책자는 고사하고 멕시코시티에 관한 정보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내가 알고 있는 멕시코란 타코, 죽은 자들의 축제가 열리는 곳, 데낄라~, 피라미드, 트로츠키의 망명지, 마약(어휴~). 대략 그 정도였다.
대충 돌아다닐 곳을 정하고, 동선을 계획하는 사이 딸이 점점 다가앉았다.
“할머니랑 너랑 다 같이 다닐 때는 제대로 된 숙소 잡고 식사도 하지만, 엄마 혼자 다닐 때는 여럿이 자는 게스트하우스 조그만 침대에, 먹는 것도 부실해.”
영어로 써진 론리 플래닛 책자를 보느라 미간에 주름을 긋던 내가 말했다.
“누가 들으면 그동안 엄청 근사한 곳에서 재워준 줄 알겠어. 나도 멕시코 음식 잘 먹어.”
“용건이 뭐야?”
“나도 가자, 멕시코.”
그리하여 출발 3일 전 여행자가 추가되었다. 멕시코와 쿠바를 20일 정도 돌아보는 것으로 최종 계획을 잡았다.
멕시코에 도착해서 처음 먹은 것은 당연히 타코였다. 근처 직장인들에게 인기라는 동네 유명 맛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갓 튀겨낸 토르티야를 받아서 셀프로 내용물을 채워 먹는 시스템이었다. 한 개를 순삭 하고 또 하나를 집어 들었을 때, 한 입정도 베어 문 타코를 앞에 둔 채 멀뚱히 앉아 있던 딸이 말했다.
“못 먹겠어.”
고수 때문이다. 남미의 거의 모든 음식에는 고수가 들어간다(멕시코는 중미이지만, 하여간 여기 음식에도 고수가 들어간다). 통째로 넣으면 빼낼 수도 있으련만 잘게 다져 넣기 때문에 요령이 생길 때까지는 상당히 곤혹스럽다. 그것이 그 날 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였다.
다음날 저녁에는 ‘여행지에서는 현지 음식만 먹는다’는 내 신조 따위 버리고 맥도널드를 찾았다. 햄버거에도 야채가 들어있을 것 같아 싫다며 감자튀김만 시켰을 때 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한여름의 멕시코 햇빛을 맞으며 돌아다닌 3일째 밤, 맥주를 마시며 여행책자를 뒤적이던 내 옆에서 딸은 눈물을 흘리며 웅크려 있었다.
아픈 것도, 화가 난 것도, 배가 고픈 것도 아니라고 했다. 3일째 밥 잘 먹고 술도 잘 마시며 돌아다니는 나와는 달리 감자튀김과 피자 한 조각(무려 ‘피자 헛’을 갔는데, 여기서도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식사를 포기했다) 밖에 먹은 것이 없던 딸은 기분이 좋지 않은 데 이유를 모르겠다며 또르르 또르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만사가 귀찮고 밥 생각도 없다며 짜증 내는 딸을 끌고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한인식당을 찾아갔다(오, 멕시코의 한인 식당은 인기가 좋았다. 멕시코로 이민 갈까 잠시 고민했다).
“아, 그래. 네가 먹기 싫음 내가 다 먹으면 될 것 아니야.”
식당에는 서너 자리가 현지인으로 차 있었고, 그들을 위한 배려인 듯 샤이니의 공연 영상이 되풀이되며 재생되고 있었다. (종현이 유명을 달리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다). ‘여기서 종현이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보다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딸은 주문한 김치볶음밥과 라면이 나오자 얼굴을 파묻을 기세로 먹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울 때 힘든 점 중 하나는 ‘뭘 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경험 많은 할머니들은 울음소리만 듣고도 ‘배가 고파서’ 우는지, ‘기저귀 갈 때가 되어서’ 우는 것인지 안다는데, 아직 울음소리만 듣고 그걸 아는 어른을 만난 적은 없다. 아이와 적응하게 되면 순서가 정해질 뿐이다. 일단 우유 먹은 지 얼마 안 됐으니, 기저귀를 먼저 보고, 그게 아니면 바람이 쐬고 싶은 건가? 아니면 안아 달라는 건가? 뭐 이런 식이다. 아이가 의사표현을 하게 되면 그만큼 돌보기가 쉬워진다.
문제는 우리가 ‘뭐 먹을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아무거나’라고 대답하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뭘 원하는지 상대방에게 말해주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이 뭘 원하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화가 난 이유가 ‘상대방이 무심결에 내게 한 대답’때문인지, '좀 전에 먹은 음식이 맛 없어서'인지, ‘어제 잠을 설쳐 피곤해서’인지 모르면 그 상태를 나아지게 할 방법이 없다.
“종현이 때문에 슬프지만 김치볶음밥은 너무 좋아?”
내게는 국물 한 모금 주지 않고 두 그릇을 비워내고 고개를 든 딸에게 물었다.
“미안해. 엄마한데도 종현이한테도.”
내가 볼 때 가장 미안해야 할 사람은 본인이다.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며칠씩 굶지 않았어도 된다. 멕시코의 한식이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다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자정이 가까운 늦은 시간이었는데 무섭지도 않았다. 배부른데 세상 무서울 것이 뭐람. 그러니 제대로 알려 달라는 말이다. 진짜로 네가 원하는 것이 뭔지! 나 살기도 힘든데 이런 것까지 챙겨야 하는 내가 더 안됐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