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언니가 곗돈을 들고 사라진 날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사람, 그게 나인 줄 알았다

by 이지아

그땐 몰랐다.

남편이 사라진 자리를,

지폐와 정수기로 메우고 있었다는 걸.


남편은 점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방에 현장이 있어서,
며칠은 거기서 지내야 돼”
그 말은 자주, 반복됐다.

어떤 날은
이틀, 사흘씩 연락이 없기도 했다.

처음엔 몇 번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신호음이 울릴 때마다,
‘바쁘겠지, 전화를 받을까?’ 싶었지만,
결국 걸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집을 정리하고 빨래를 개며

아무 일 없는 듯,
괜찮은 척.

나는 거울 앞에 앉아 루주를 몇 번이고 고쳐 발랐다.

"그래도, 나는 잘 살고 있어."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남편이 없을수록 애들에게 더 신경을 썼다.

애들 방의 한쪽 벽면을 전집책으로 가득 메워놓고는 공부를 시켰다.

특히 주영이한테는 개인과외도 시켰다.


잘 못하는 것 같으면 모진 말도 많이 했다.


" 이것도 모르겠어?...!"


어떤 날은 삐뚤빼뚤한 주영이 일기장을 쫙쫙 찢어버린 날도 있었다.

"글씨 똑바로 써...!"


겁에 질려 놀란 토끼눈을 딸아이의 눈을 보고, 흠칫 놀랐지만,


그게 잘 키우는 거라고 믿었다.

나는 글자 하나, 숫자 하나도 몰랐으니까.

나는 내 애들만큼은... 누구한테도 꿀리지 않게 키우리라...
좋은 옷, 좋은 신발을 날마다 사다 주었다.


아이들 손에 가득 들려주는 물건들로,

나는 내 불안한 모래성을 한 겹 한 겹 덧댔다.


낮엔 애들 앞에서는 애써 씩씩한척했지만. 밤이 되면 외로움이 몰려왔다.


어쩌면 그때 나는 사랑보다
‘괜찮아 보이는 안정감’을 더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안정감이 남편의 부재를 덮어줄 거라 믿었고,
그래서 생활비가 들어오는 한,
나는 외로워하면 안 되는 거였다.


거실에 놓여진 최신식 정수기에서는 맑은 물이 콸콜 쏟아졌지만,

나는 한모금도 넘기지 못했다.


혼자라는 외로움은 깊은 밤이 오면 어김없이 날 찾아왔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하는 대신 소주 몇 잔에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유리잔속의 소주 몇 방울이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쓰면서도 짜릿한 맛이 온몸에 퍼져나갔다.

지독한 그리움이 단박에 잊힐 만큼 알싸하고 쌉싸리한 맛.


어느덧 그 소주 몇 잔이, 한 병이고 되고 , 두병이 될수록

복잡한 머릿속이 말끔히 비워지는 듯했다.


넉넉한 생활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다음날이면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내 완벽한 성에는

빳빳한 지폐가 차고 넘쳤고,
정수기에서는 맑은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내 오토바이는 못 가는 곳이 없었다.


곗돈 날이면, 나는 늘 맨 먼저 도착해 있었다.
같은 계원이었던 미용실 언니랑 친해지면서 속사정도 곧잘 이야기하곤 했다.


우리는 둘 다 먼저 앉아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한숨부터 쉬곤 했다.


“우리 남편이 요즘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

속 터져 죽겠어. 미용실이 장사가 잘되는 것도 아니고..."


언니의 한숨과 푸념이 자꾸만 내 안에 남아 있던 그늘을 건드렸다.

누군가의 슬픔이 먼저 열리면, 나도 내 슬픔을 내밀어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언니, 우리 남편은, 집에 안 들어온 지 꽤 됐어요."


말끝이 흐려졌지만,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등을 한번 짚어주었다.


" 그래도 주영이 엄마. 애들 아빠가 돈은 벌어오잖아..."


"그래,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사는 게 다 똑같네 그려..."


위로인지, 체념인지 모를 말들이,

내 안의 허전함을 점점 더 크게 느껴지게했다.


이내 미용실 언니 신랑처럼 돈도 안 벌어 오면 어쩌나 하고는,

'내가 좀 낫지'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미용실언니를 만나는 날이면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풍요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건


미용실 언니가 곗돈을 들고 사라진 날부터였다.


#도라지꽃 #명순이 #외로움 #대물림




『도라지꽃』 시즌2


브런치북을 구독하고 다음 이야기도 놓치지 마세요.


미용실 언니를 통해 자신이 잘살고있다고 믿고 싶었던 명순.


하지만, 미용실언니와 함께 곗돈이 사라지고...


우리 문학소녀 명순이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할수 있을까요?


'작가 구독'을 눌러주세요.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에서 명순이와 함께 걸어가 주세요


*자전적 소설 <도라지꽃 시즌1 : 완결> 정주행하기


*감성시집 <너를 부를 때마다 꽃이 핀다 > 보러 가기


*그리고 <부모면접>


이전 13화르망이 들어온 날, 마침내 나는 잘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