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보고 싶은 게 아니라, 꺼내 쓰고 싶었던 거다.
싱크대에 기대어 막 설거지를 끝냈을 무렵, 전화가 울렸다.
" 띠리리링 ---- "
“엄마.”
목울대가 먼저 반응했다.
숨을 고르려 했지만, 목 안에서 자꾸만 헛기침이 났다.
“잘 지내냐.”
익숙한 첫마디.
늘 그랬다. 안부 반, 계산 반.
“오빠가, 요즘 좀 힘들다.”
두 번째 문장은 기다렸다는 듯 본론이었다.
마치 대사처럼, 대본처럼.
“중국집 하나 내보려 한다. 자리 봐놨다. 좋은 자리다.”
‘좋은 자리’라는 말이 꼭 ‘놓치면 손해’라는 주문처럼 들렸다.
엄마는, 꼭 그래야만 마음이 덜 불편해지는 사람처럼, 감정을 꺼내기 전 숫자를 먼저 꺼내곤 했다.
“... 얼마면 되는데요.”
이상했다.
내가 먼저 물어봤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이, 마치 내가 이걸 오래 기다려온 것처럼 들렸다.
지갑을 열기 전에, 마음부터 열리는 기분.
이내 수화기 너머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처럼, 얇고 낡은 웃음이 들려왔다.
안도감에 젖은 웃음이었다.
그리고 이내 엄마는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잘 키운 딸 하나, 살림 밑천이지 뭐. 안 그러냐?”
어렸을 땐. 그 말이 웃기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땐 엄마가 날 자랑스러워한다는 증거처럼 들렸고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착각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거래의 신호였다는 걸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이 꼭 나한테 영수증 찍히는 소리 같았다.
엄마와의 통화는 길지 않았다.
총액이 정해지자, 대화는 마무리됐다.
“그럼... 보낼게요.”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데 7초쯤 걸렸다.
주저한 건 아니었다.
어쩌면, 너무 빨리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잠깐 동안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계속 꺼내 쓰는 거잖아.
언제 바닥나는지 알 수 없게.
가끔은 내가 그 밑바닥인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그 문장 하나에 작게 죽었다.
밑천이란 건, 쓸수록 바닥나는 거니까.
그게 나라니.
나는 내가 ‘잔액’인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 바닥나도 이상하지 않을 쌀독이었다.
‘차단’이란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다.
전화는, 걸면 받는 거였고
받으면, 들어야 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한참을 그 옆을 떠나지 못했다.
어쩌면, 진짜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릴지도 몰라서...
통화는 십 분도 안 걸렸다.
하루를 들썩이게 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지갑이 열리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날 밤, 저녁상을 물리고 남편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건넸다.
그는 생각보다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줘. 우리가 형편 되잖아. 형님은 이제 자리 잡아야지.”
그 말이, 이상하게 고마웠다.
아니, 사실…
좀 미웠다.
그는 선하게 말했다.
나는, 속이 쓰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고,
그 다문 입술로 마음까지 봉해졌다.
엄마가 부산에 내려왔다.
전화를 한 것도, 미리 말한 것도 없었다.
허리 굽은 몸에 반찬 보자기 하나를 들고.
“가는 길에 들렀다”는 말로 현관 앞에 섰다.
문득, 현관 앞에서 엄마를 마주했을 때 스친 생각이 있었다.
'저 보자기 안에는 요구가 들었겠지...'
하지만 그건 너무 삐딱한 생각이라 금세 지워버렸다.
나는 그런 딸이 되기 싫었고, 엄마는 늘 그래왔으니까.
언제나 지나가는 길이라며 들렀고,
언제나 손을 놀려 무언가를 닦았고,
그러다 마음까지 꺼내놓고 갔었다.
첫날은 조용했다.
이틀째는 손이 바빴다.
냉장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삶고, 욕실 거울의 물때까지 닦았다.
아이들과도 잘 놀아줬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오래전부터 이 집을 지켜온 사람처럼.
남편은 미소 지었다.
“어머니 오시니까 집이 정리되는 것 같아요.”
그 말에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아휴, 무슨. 그냥 보이니까 하는 거지.
사위 말이 참 곱다. 너 복이야, 명순아.”
사흘째 저녁, 찌개를 끓이며 엄마가 말했다.
“쌍둥이들이, 떡하니 경기상고에 붙었어.
두 놈이 어찌나 머리가 똑똑한지...
근데 학교는 가야 되는데... 공납금이 걱정이다.
입학금에, 교복까지, 전부 2배잖니...
거기만 나오면 은행이며 증권회사며
취직은 그냥 이라던데..."
엄마는 계산이 들어선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더니 이내 말꼬리를 흘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명순아, 너희가 좀 도와주면 좋겠다.
쌍둥이들 학교는 가야 하니까...
3년 치 학비만 도와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의 말이 점점 작아졌다.
마치 자신도 이 부탁이 쉬운 건 아니라는 듯이.
한순간, 그녀의 눈가가 붉어지는 걸 봤다.
나는 젓가락을 멈췄고,
남편은 순간 나를 보았다.
“걔네가 아버지도 없고, 엄마 혼자 폭폭 하게 키우는데 불쌍하잖니..."
남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머니.
처남들 공부해야죠. 제가 해야죠.”
그 말이 고마웠다.
정말로.
하지만, 어디선가 쓱 밀려오는 감정이 있었다.
고마움이라보단... 질투에 가까운 감정.
왜 나는 이토록 주저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이렇게 쉽게 고개를 끄덕일까.
그리고 점점 이 남자의 끄덕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숨을 쉬며, 손등으로 눈을 쓸었다.
“미안하다.
너무 고마워서 그만 눈물이 난다.”
엄마는 큰 짐을 덜었다는 듯 웃었다.
그 웃음이 꼭,
오래전 당신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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