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방에선,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나를 영원히 무너뜨린 친절에 중독되었다.

by 이지아

천 원짜리 두 장을 들고나갔다.

담이 걸려 파스를 붙이다 말고,

그냥, 잠깐 걷다 온다는 생각이었다.


그날 밤, 골목 안쪽 불빛이 눈에 밟혔다.
간판도 없는 허름한 문.
안쪽에선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무심코 들어섰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 언니 '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 한마디는,
내가 사람으로 존재한다고 믿게 만든 달콤한 친절이었다.


나는, 나를 무너뜨린 바로 그 친절에 중독되었다.


#도박장의 불빛


의자에 앉자마자 누군가 김 오르는 믹스커피를 건넸다.

종이컵을 쥔 손이 따뜻했다.

담배를 한대 태우려 불을 붙이려다가,

습관처럼 천장을 올려다봤다.


낮은 형광등 아래 뿌연 연기 속에서,

벌레 몇 마리가 힘없이 날고 있었다.


주전자에는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던, 지독하게 공허한 날이었다.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땐,

사람들이 반갑게 내 이름을 불러줬다.


"언니 왔네." 살가운 목소리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자욱한 담배연기로 뒤덮인 도박장안에서

누군가 나에게 속삭이는 듯하는 말이 들려왔다.


"여긴 사람 취급은 해줘. 그거면 된 거 아냐?"


'사람취급'

단 네 글자가 내 심장을 움켜쥐었다.

사람대접. 그것이면 된 거였다.


그다음부터는 망설임 없이 라이터를 빌렸고,

일주일쯤 지나자 나는 눈 감고도 패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곳은 사람을 봐주는 곳이 아니라,
각자의 절망을 보지 않기 위해
더 깊이 패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조차
숨 쉴 구멍 같았다.


“언니 왔네.”

그 한마디가,


내가 살아있다고 믿게 만드는 유일한 말이었다.


한 달쯤 지나자 나는 더 이상 돈을 계산하지 않았다.

지면 뼈아픈 아쉬움이 손톱 밑을 파고들었고,

따면 그 돈으로 술을 사 마셨다.


차가운 소주병을 병째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앞에 벗어둔 코트는 그대로였다.

며칠 전 벗어두고 다시 손대지 않은 그것처럼,

내 삶도 멈춘 채 방치돼 있었다.


이내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쌉쌀한 연기가 폐를 채우면,
하루라는 게, 어제와 얼마나 달랐나 싶었다.

달력엔 며칠 전 날짜가 그대로였고,
방 안은 담배연기와 눅눅한 공기로 가득했다.

티브이도 켜지지 않은 방, 켜지지 않는 나.


그제야 나는 하루가 끝났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기어이,

'사람대접'은 나를 도박장으로 불러들였다.


#도라지꽃 #명순이 #외로움 #중독 #집착



『도라지꽃』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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