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영원히 무너뜨린 친절에 중독되었다.
의자에 앉자마자 누군가 김 오르는 믹스커피를 건넸다.
종이컵을 쥔 손이 따뜻했다.
담배를 한대 태우려 불을 붙이려다가,
습관처럼 천장을 올려다봤다.
낮은 형광등 아래 뿌연 연기 속에서,
벌레 몇 마리가 힘없이 날고 있었다.
주전자에는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던, 지독하게 공허한 날이었다.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땐,
사람들이 반갑게 내 이름을 불러줬다.
"언니 왔네." 살가운 목소리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자욱한 담배연기로 뒤덮인 도박장안에서
누군가 나에게 속삭이는 듯하는 말이 들려왔다.
"여긴 사람 취급은 해줘. 그거면 된 거 아냐?"
'사람취급'
단 네 글자가 내 심장을 움켜쥐었다.
사람대접. 그것이면 된 거였다.
그다음부터는 망설임 없이 라이터를 빌렸고,
일주일쯤 지나자 나는 눈 감고도 패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곳은 사람을 봐주는 곳이 아니라,
각자의 절망을 보지 않기 위해
더 깊이 패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조차
숨 쉴 구멍 같았다.
“언니 왔네.”
그 한마디가,
내가 살아있다고 믿게 만드는 유일한 말이었다.
한 달쯤 지나자 나는 더 이상 돈을 계산하지 않았다.
지면 뼈아픈 아쉬움이 손톱 밑을 파고들었고,
따면 그 돈으로 술을 사 마셨다.
차가운 소주병을 병째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앞에 벗어둔 코트는 그대로였다.
며칠 전 벗어두고 다시 손대지 않은 그것처럼,
내 삶도 멈춘 채 방치돼 있었다.
이내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쌉쌀한 연기가 폐를 채우면,
하루라는 게, 어제와 얼마나 달랐나 싶었다.
달력엔 며칠 전 날짜가 그대로였고,
방 안은 담배연기와 눅눅한 공기로 가득했다.
티브이도 켜지지 않은 방, 켜지지 않는 나.
그제야 나는 하루가 끝났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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