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시골인 사람의 특권

시골이 고향인 사람이 가진 것

by 네이미스트 지안

나는 40대다. 고등학교까지 시골에서 졸업했다.

KakaoTalk_20260221_161735115.jpg 고향 풍경 - 2026.2.21 토


세월은 흐르고, 어느덧 고향에서 자리를 잡은 친구들도 제법 있다.


설 명절 뒤로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내려왔다. 오랜만에 고향 학창시절 친구들도 만났다. 소소한 모임이었다.


신경과 약을 먹고 있는 나는 술도 못 먹지만,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나갔다.


40대 중반의 아줌마, 아저씨, 결혼 안한 친구 사이에 나의 포지션은 '공부 잘한 아이'다. 나는 어린 시절 공부를 잘하고 싶었고, 반장을 12년을 했다. 나는 그렇게 나서고 싶고, 모범생으로 살고 싶었던 아이다.


아이들한테 여전히 나는 그 포지션이다. 나는 모범생 포지션과 다르게 성격은 ENFP로 매우 감성적이고 복잡하고, 호기심도 많고, 생각도 많다. 예쁘고 키도 큰 성격 좋고, 친구도 많던 친구도 나와 같은 MBTI였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외라는 눈빛을 내게 보냈다.


나는 'TV에서 외향적으로 펼치는 사람을 보면, 대리 만족을 느껴.' 라고 이야기 했다. 어쩌면 그 친구들은 나의 의외의 모습을 봤을지 모르겠다.


그 모임의 친구들은 학창시절에는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았다. 학년당 4반의 작은 학교니, 이름은 서로 아는 사이지만, 학창시절에는 이렇게 따로 모일정도의 멤버는 아니었다.


우리는 시간을 살아왔고, 달라졌다. 그리고 다시 작은 학창시절을 공유한 친구로써 이렇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학창시절이야, 공부 잘한게 제일 잘나 보이진 모르겠다.


썸은 한번 있었던 것 같지만, 연애 한 번 못해봤다는 내 고등학교 시절이 안타깝다 말하던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시골 사람들의 특유의 순수함, 직설적인 표현이 있다. 나는 여자, 소위 곰 과다. 나는 여우가 되질 못하겠다. 같은 여자로 여우 과를 많이 본다. 외적으로는 여우 과들이 확실히 예쁘다. 하지만 같은 동성 친구로써는 어렵다.


앞에서 투명한 사람이 좋다. 적어도 내 친구들은 그랬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저 바른 사람일까? 아닐 것이다. 나 역시도 욕망하고 꿈꾸고 현실에 불만도, 답답함도 많은 그저 그런 범인이다. 아이들은 항상 1등하던 내가 좀 더 잘난 직업을 갖길 기대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려면 역시 대치동에서 커야 했을까? 나는 조금 머리를 쓰는 프리랜서로 일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삶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아직 까지는.


세상살이에서는 대학, 결혼, 직장 선택이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살아보니, 알겠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내 자식을 통해서는 철저한 겸손을 배웠다. 나는 인간이란 생명체고, 이 생명체의 몇%는 장애를 가졌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내 자식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그 확률을 내 일이 아니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다.


나는 시골학교를 나왔어도,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내 암기력은 시험 볼때 대충 문제집 어디에 있었던 것 까지 기억했다. 나는 내 아이를 이해하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아이 유치원 시절에 아이의 장애를 알고 나는 길을 잃었었다. 내가 멘탈이 나간 그 시절에 만났던 친구도 그날 있었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고마웠고, 그 10년 전의 고마움을 겨우 술 값으로 내는 것으로 갚는게 못내 미안하다.


나는 그렇게 평소에 친구랑 떠드는 타입은 아니다. 밝은 편이지만, 평소에는 내 일 위주로 조용히 산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를 매번 카톡으로 떠드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꾸준히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린 시절 고향친구라고, 일년에 한두번 내려오는 친구를 만나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그 따뜻함은 시골이 고향인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 이다.


사람에게는 역할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큰딸로 주로 '강함'이 역할 이었다. 어느새 부모님은 나이드셨고, 고향 집에서 나는 바쁘다. 그동안 얼룩이 든 가스렌지도 닦고, 싱크대도 닦고, 폐기물 스티커를 읍사무소 가서 사와서 오빠가 정리해 내놓은 쓰레기를 버린다.


장도 보고, 국도 끓이고, 반찬도 사서 나른다. 나도 어쩜 고향에선 마냥 쉬고 싶었다. 엄마 품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미 무릎도 몸도 안좋은 우리 엄마를 내가 보살펴야 하는 세월이 되어 버렸다.


성인 되면서 몰아치는 경제력의 의무.

결혼을 하면서 몰아치는 희생의 의무.


시골에서 공부만 잘하면 되었던 10대 시절이 그나마, 쉬웠다는 것을 이제서야 조금 알겠다.


다들 작고 큰 고민을 안고 있었다. 나도 이야기로 털고 싶었지만, 차마 너무 개인적인 일이라 '말을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고개를 주억거리고,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장난스레 이어갔다. 확실히 대학때 친구들과는 다르게, 그 가벼움 안에서도 깊이가 있다.


살아온 내공과 경험치는 다르겠지만, 비슷한 나이대가 가지는 문화 공감대, 시골이라는 어린 시절 성격이 형성되는 시간을 공유한 공통점. 그 편안함이 남달랐다.


누군가 우리 아이의 고향을 물었다. 태어났던 병원을 이야기 해야 하나? 아기때 살았던 곳을 이야기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그에 비해 내 고향은 확실하다.


아이 때문에 맹모삼천지교를 하느라, 양평에서 산 적이 있다. 같은 시골이라도 거기는 내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느 날은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카페를 간 적이 있을 정도였다.


고향에서는 같은 시골 풍경인데, 내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같이 공유된 모습이라, 그런 외로움이 없다. 고향의 묘한 매력이다.


시골은 분명 장단점이 있다. 친구들은 서로서로 얽힌 관계를 거의 알았다. 서로 좀 맞는 친구도, 아닌 친구들도 보인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공부 잘하던 나라는 친구의 아이가 장애이고, 내가 결혼생활을 힘들어 했다는 것도 소문이 다 나있을 것이다.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 감추고 싶지 않았다. 이만큼 조금 숨통이 트일만큼 말했는데도, 여전히 답답하다. 그런데 그저 나의 사회적 이미지를 위해서 나의 힘든 점을 말도하지 못했다면 이미 말라 죽었을 거다. 나는 살기 위해서 어느정도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나의 모든 것을 이야기 하기에는 나는 조금은 위험하다. 스스로 내가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억눌러 왔기때문에 삐뚤어진 마음도 있고, 조금 남다른 환경때문에 넓은 마음도 있다. 이해의 폭이 강제로 넓어진 면도 있다. 정말 중범죄가 아닌 이상, '그럴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동성애, 소수종교 등.


어느 정도 선 안에서 '아, 좋은 사람들이구나, 좋은 친구들이구나.' 느낄 수 있는 것. 같이 술한잔 하면서 웃을 수 있는 시간. 그저 그 어린 시절 학창시절 동창이라는, 고향친구라는 공통점을 누릴 수 있는 그 특권이. 그날 참 아름답다 생각했다.


돌이켜 본다면, 나도 연애를 진하게 좀 더 많이 해볼 걸 후회한다.

젊은 날은 너무도 짧다. 왜 내 첫사랑 소식은 아무도 모른단 말이냐. 나타나지 않은 그 아이가 멋지기도, 야속하기도 하다. 그때 나는 어렸다고, 나도 정말 너를 좋아했고, 네 고백을 받아들일 만큼 내가 성숙하지 못하고, 부모한테 억눌려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그 아이가 내 첫사랑이 맞다. 그런데 친구들 사이에 내 이야기할 틈은 없다. 다들 한 잔 들어갔겠다. 각자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다 보면, 나의 이런 하나밖에 없는 썸 서사는 명함도 내밀 수가 없다. 그냥 나는 그 아이들 사이에 공부 잘하고, 너무 잘난체 하지 않았던 모범생 이다.


이번에 만난 친구들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우리는 소위 논다는 친구들도 착했다. 누가 누구를 괴롭히고 이런게 없었다. 교육 수준은 시골이라 경쟁력은 약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친구들 사이에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는 건 큰 복이다.


순수한 시절은 너무도 짧다. 젊은은 그저 젊음 자체로 빛난다.


공부만 하고 있는 나같은 바보 같은 친구들은 제발 젊음을 누리길 바란다. 반짝반짝한 오직 젊음이라는 그 시절을 말이다.


시골을 고향을 가진 내 특권.


앞으로 내가 건강하게 잘 살아나갈 수 있다면 50대, 60대, 70대, 80대, 90대 까지도 만나서 누려보고 싶다. 너무 수명을 내맘대로 많이 잡나?


살아가는 그 시간 속에

고향이라 부를 수 있는 푸근한 공간이 물 맑고 공기좋고, 마음 좋은 친구들이 있는 시골이라는게 너무 좋다.


같이 잘 살고,

같이 잘 나이들자.


내 고향.

내 고향 친구들.


KakaoTalk_20260221_161735115_01.jpg 친구들이랑 먹었던 감자탕. 본때 감자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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