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

영원한 작별

by 김지안

처음에는 늘 장난으로 시작한다. 아빠는 농담처럼 놀이처럼 툭툭 치면서 마음을 놓게 만든다. 그러고는 말도 되지 않는 이상한 이론을 늘어놓고 도발한다. 슬슬 열이 오른다. 논쟁이 절정에 달한다. 아이들은 화가 나서 엉겁결에 말실수한다. 그럼 때는 이미 늦었다. ‘어디서 건방지게 아빠한테 버릇없이!’ 아빠가 이제 애들을 때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마법의 단어.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된 아빠는 나를 안방으로 부른다. 엄마는 빨리 아빠한테 사과하고 잘못을 빌라고 한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방 한가운데 선다. 아빠는 방문을 닫는다. 등 뒤에서 딸깍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방 안에는 아빠와 나 둘뿐이다. 어린아이 눈에 비친 성인 남자는 압도적으로 거대하다. 아빠는 짐짓 관대한 판사 흉내를 내며 지금이라도 죄를 뉘우치면 봐준다고 말한다. 너무 무서워서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으니까. 아빠는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라고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눈을 감는다. 아빠가 주먹을 날려 내 뺨을 세게 친다. 혈관이 터져서 입안 가득 피가 고인다. 비릿한 맛이 난다. 멍이 든 볼이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아빠가 직장 상사와 크게 싸우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다. 원래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아빠가 돈을 주지 않으니 집안 형편이 더 나빠진다. 엄마는 돈을 버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고 집에만 있는 아빠는 집안일하거나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 아빠는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책을 보고 가만히 앉아서 아이들에게 잔심부름을 시킨다. 저녁이 되면 학교에서 돌아와 피곤한 딸들을 붙들고 밥을 내놓으라고 성화다. 우리는 교복도 갈아입지 못하고 식사 준비를 한다. 집에는 쌀과 김치밖에 없다. 할 수 없이 김치찌개를 끓인다. 반찬이 이게 뭐냐며 아빠가 반찬 투정을 한다. 투덜대면서 밥그릇을 싹싹 다 비운 아빠는 지저분해진 밥상을 그대로 두고 방으로 들어간다. 언니와 내가 설거지를 하고 어질러진 집안을 대충 치우고 방에 들어가 공부한다. 밤늦게 엄마가 귀가하면 아빠는, 딸들이 자기를 무시하여 저녁밥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엄마한테 이른다. 엄마가 우리를 혼낸다. 우리말은 듣지 않는다. 엄마 뒤에 숨어서 아빠가 웃는다. 아빠는 배가 고프다며 고기를 사달라고 엄마를 조른다. 엄마는 근처 가게에서 고기를 사다가 아빠에게 밥을 차려준다.

출근하지 않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아빠가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어 구타하는 일도 전보다 잦아졌다. 어느 휴일 낮. 고3인 언니는 방에서 공부하고 나는 부엌 식탁에서 ‘전쟁과 평화’를 읽는다. 시계 초침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두어 시간이 흐른다. 심심해진 아빠가 부엌을 지나 부엌 옆에 붙은 우리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간다. 아빠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언니에게 다가가서 ‘네 주제에 대학이 가당키나 하냐. 공부한다고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으냐?’라며 도발한다. 언니는 참는다. 여기서 넘어가면 끝장이니까. 계획대로 잘 풀리지 않으니, 이번엔 나에게 온다. 아빠가 자기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 들이대며 속삭인다. ‘네 머리로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는다고?’ 하면서 비웃는다. 화가 나지만 못 들은 척한다. 아빠는 노상 나더러 멍청하다고 한다. 심지어 아빠 친구 앞에서 ‘얘는 제 어미 닮아서 머리가 나쁘다’라며 망신을 준 일도 있다. 아빠는 계속 언니와 나에게 번갈아 가며 모욕적인 말을 쏟아낸다. 참다 참다 결국 언니가 폭발한다. 아빠에게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자, 아빠가 언니 머리채를 잡고 거실로 끌고 나온다. 나는 일어나서 아빠를 말려보지만 역부족이다. 언니가 끌려 나오면서 버둥대는 통에, 식탁에 있던 물건들이 다 떨어져 박살이 난다. 아빠가 언니를 바닥에 던지고 두들겨 팬다. 그걸로 분이 다 안 풀렸는지 안방 문짝을 주먹으로 치더니 급기야 문틀에서 뜯어낸다. ‘너희가 고등학교 다닌다고 건방지게 아빠를 무시한다’라며 ‘싹수가 없는데 공부는 해서 뭐 하냐’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아빠는 망가져서 잘 맞지도 않는 문을 문틀에 비스듬히 세워두고 책상에 앉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책을 읽는다. 언니는 울면서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가져와 잔뜩 어질러진 거실을 청소한다. 오늘은 언니지만 내일은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전쟁과 평화’를 못 읽는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어느 날, 대학생인 나는 그림 숙제를 잔뜩 싸 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이미 연달아 5일 밤샘을 한 나는 피곤함에 절어 잔뜩 예민하다. 컴퓨터를 켜고 과제를 하려고 막 자리를 잡는데 아빠가 방 청소를 한다면서 들어온다. 나는 수법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과제에 집중한다. 나는 등받이가 있는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데 아빠가 굳이 책상 밑에 빗자루를 들이밀어 의자 다리와 방바닥 사이를 구석구석 아주 꼼꼼하게 청소한다. 마침내 빗자루질이 끝났는지 아빠가 방을 나간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컴퓨터 작업에 열중한다. 이번엔 아빠가 걸레를 들고 나타난다. 의자 다리 사이로 걸레 잡은 손을 쭉 뻗으며 발을 들어보라고 한다. 계속 오른쪽 왼쪽 이리 비켜봐라 저리 비켜보라 하면서 연신 걸레질을 한다. ‘아 좀! 이따가 청소하면 안 돼? 집중이 안 되잖아!’ 그 순간 아빠가 의자 등받이를 밑으로 잡아당겨 그 반동으로 의자가 앞으로 미끄러진다. 의자와 함께 나는 목이 꺾인 상태로 뒤로 한 바퀴 구르고 머리가 먼저 바닥에 떨어진다. 방바닥에 누워있는데 아빠가 나를 발로 차고 주먹질을 해댄다. 머리를 어찌나 세게 때리는지 눈앞에서 스파크가 튄다. 나는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너무 아프고 황망한 와중에 ‘아 이제 드디어 죽나 보다’하고 반가운 마음이 든다. 어차피 별로 살고 싶지도 않았는데 잘 됐다 싶다. 언제 집에 왔는지 엄마가 아빠를 말린다. 엄마가 빨리 학교로 피신하라고 한다. 나는 과제를 가방에 쓸어 담고 황급히 집을 나온다. 비가 아까보다 더 많이 내린다. 빗길을 마구 달려 간신히 막차를 잡아타고 학교에 도착한다. 동아리방에 들어가서야 한숨 돌린다. 몸에는 피멍이 들고 옷은 비에 젖어 축축하다. 긴장이 풀리니 춥고 배가 고프다. 하루 종일 굶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생각난다. 젖은 옷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고 캐비닛을 뒤져 두꺼운 잠바를 꺼내 입는다. 술 먹고 옷에 토했을 때 대신 입으라고 동아리 선배가 기증한 옷이다. 잠바를 이불처럼 꽁꽁 싸매고 기다란 쿠션 의자에 눕는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 눈물이 계속 난다. 잠바는 생각보다 따뜻하다.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조차 이렇게 다정한데 우리 부모는 나에게 왜 그리 모진 걸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에 여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우는 소리에 놀라서 깬다. 귀신인 줄 알았는데 기독교 동아리에서 통성기도를 한다. 저렇게 울고 소리치고 다 쏟아내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해질 것 같다. 다음날 집에 들어가니 아빠가 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한다. 소름이 끼친다.

아빠가 아이들을 상습 구타하는 데는 딱히 이유가 없다. 웃고 장난치고 떠들다가 갑자기 돌변한다. 그러니 모든 순간이 불안의 연속이다. 늘 긴장하고 있으니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 기진맥진한다. 불안하니 집중을 못 한다. 집중을 못 하니 어떤 일도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 수시로 짐짝처럼 취급당하니 자긍심을 갖기 어렵다.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고 느낄 수가 없다. 내 존재가치가 과연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살아있는 건지 의문만 커진다. 이런 상태가 계속 반복되니 빨리 삶을 마감하고 편안해지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속이 텅 빈다.

가족과 절연하고 집을 나오니 이젠 꿈에 아빠가 나온다. 꿈속의 아빠는 현실의 아빠가 평소에 하던 행동들을 한다. 특유의 장난기 많은 얼굴을 하고 깐족거리면서 약을 올리고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무언가를 비웃거나 내가 아끼는 물건들을 훔쳐 간다. 너무 생생해서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은 북받치는 감정에 휘둘린다. 어떤 꿈에서는 내가 오렌지 주스를 컵에 따라 식탁에 놓고 주스 병을 냉장고에 넣으러 간 사이 아빠가 주스를 싱크대에 쏟아버리고 실실 웃는다. 집 나온 지 10년이 넘었어도 아빠 꿈은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다.

아는 언니랑 모 방송국 음악프로그램 공개방송에 갔다. 어릴 때부터 가족끼리 다 아는 사이여서 언니가 종종 엄마 아빠 소식을 전한다. 그래서 아빠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날 알았다. 자리 추첨에 문제가 있어 언니와 나는 따로 앉았는데 덕분에 혼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아빠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래도 세상에 정의가 살아있긴 한가 보다. 인과응보는 진리다.’라는 생각이 든다. 공연장 불이 꺼지고 현란한 조명들이 사방을 비추고 음악 소리가 크게 울려 시끄러워지니까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다. 정말 기분이 이상하다. 슬프고 괴로우면서도 속이 시원하고 기쁘면서도 허탈하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뭔가가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있는 대로 긴장하면서 집중해서 봤는데 되게 허무하게 끝나버린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무대에서 가수가 이별의 아픔을 애절하게 노래할 때 그걸 핑계 삼아 꺼이꺼이 소리 내어 미친년처럼 운다. 눈물과 함께 그동안 내 안에 쌓여있던 나쁜 것들이 몽땅 빠져나가길 바라며 대학 시절 옆방 동아리 자매님들처럼 온 힘을 다해 통성기도를 올린다.

전에 다녔던 명상 센터 선생님이 해준 말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지옥에 간단다. 지옥은 장소가 아니다.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고통을 똑같이 한꺼번에 느끼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것이 바로 지옥이란다. 그러니 사는 동안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동시에 내가 고통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가 고통받으면 그만큼 상대방의 지옥이 커진다. 나를 보호하는 것이 곧 타인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죄를 지으면 벌을 주는 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벌은 자기가 저지른 행동의 대가로 자기가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나를 벌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정확히 당신이 행한 만큼의 고통을 받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인연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제발 더는 꿈에서라도 이어지지 않길 빈다. 나는 당신에게 그리고 과거의 상처에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작가의 이전글'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