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가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
큰 도로가 시원하게 뻗은 번화가에서 오른쪽 샛길로 들어서면 바로 초등학교가 보이고 좁은 길 양쪽에 키가 작은 가게 건물들이 줄지어 빼곡히 붙어 있는 동네가 나온다.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길 한복판에 있는 어떤 건물 때문에 도로가 갑자기 둘로 갈라지는 지점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좁은 오른쪽 길 바로 옆에는 앞쪽에 작은 공터가 있고 그 뒤로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진 5층짜리 건물이 있다. 아래 두 층은 상가이고 나머지는 생활 시설이다. 복식 건물이라 내부는 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아서 어두컴컴하다. 덕분에 밖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하얀 벽에 검은 창문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이 망해서 급하게 이 동네로 이사 온 우리 가족은 여기 5층에서 살았다. 계단을 따라 5층에 들어서면 좁고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작은 문들이 한 줄로 나란히 늘어서 있다. 집은 작고 좁았다. 집안에는 화장실이 없고 공용 화장실이 복도 끝에 있었는데 가는 길이 무서워서 우리 4남매는 꼭 붙어서 다 같이 화장실에 갔다. 엄마와 아빠는 빚을 갚으려고 밤낮으로 일했고, 집에는 우리들밖에 없었다. 어느 날 언니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희고 긴 치맛자락이 바닥을 끌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설거지할 때면 언니는 우리들 보고 꼭 거실에서 놀라고 했다. 그 건물에서 귀신을 봤다는 사람은 많이 있었다.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도로가 갈라지는 지점이 보이는데 바로 앞에 건널목이 있다. 도로 폭이 굉장히 좁고 차량 통행이 그리 잦지 않았음에도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났고,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 사고가 날 때마다 하얀 건물 옥상 난간에 까맣고 긴 머리에 흰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걸터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오래전에 그 건물에서 죽은 아이가 친구를 데려가는 거라고 했다.
우리는 이사를 정말 자주 다녔는데 새로 이사를 간 집들도 하나같이 형편없었다. 엄마 아빠는 집에 없고 집에는 먹을 게 없고 우리들은 외롭고 무섭고 항상 배가 고팠다. 3학년이 되어서 나는 전학해 온 뒤에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친구가 학교 끝나고 자기 집에서 놀자고 했다. 나는 너무 신이 나서 언니한테 놀다 온다고 하였고, 엄마가 집에 없는 동안 집안일을 도맡아 했던 언니는 이에 격분하여 옷을 걸 수 있는 고리가 박혀있는 기다란 쇠막대기를 들고 나를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언니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쌍욕을 해댔다. 나는 한 시간 넘게 맞으면서 잘못했다고 울면서 빌었다. 나는 속으로 분을 삭이며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는 퇴근하고 방에 들어와서 방 안 가득 마른빨래를 쌓아놓고 차곡차곡 개키고 있었다.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엄마한테 일러바쳤다. 설움이 복받쳐서 막 눈물이 났다. 언니는 혼날까 봐 그 옆에서 자꾸만 내 말을 가로막으며 다급하게 변명했다. 내가 이야기하고 언니가 옆에서 온갖 난리를 치는 동안에도 엄마는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반쯤 등을 돌리고 앉아서 빨래만 개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마치자, 엄마는 딱 한 마디만 했다. ‘언니 말 잘 들어.’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다음날 처음으로 자살 시도를 했다. 당시에 애들 사이에서 실리카젤을 먹으면 죽는다는 소문이 퍼져있었다. 그 무렵에 맛김이 소포장되어 나오기 시작했는데 김을 담긴 투명 플라스틱 통 안에는 실리카젤이 한 봉지씩 들어있었다. 아이들에게 달라고 하여 실리카젤을 여러 개 모아서 집으로 가져갔다. 언니에게 어제 일을 따지면서 욕을 한 다음에 죽어버릴 거라고 소리를 질렀다. 언니는 죽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고 비웃었다. 나는 작은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근 뒤에 실리카젤을 뜯어서 한 봉지씩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물과 함께 삼켰다. 서럽고 기분이 끔찍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먹은 것을 반쯤은 토하고 바닥에 질질 흘렸다.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옛날에 살던 그 하얀 건물이 있는 길을 지나가야 했다. 하굣길에 그 앞을 지날 때면 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그 건널목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 찻길로 뛰어들 최적의 타이밍을 잡으려고 애썼다. 한 번에 완벽하게 끝내고 싶었다. 죽지 않고 불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도로를 살피는 한편 하얀 건물의 옥상을 바라보았다. 하얀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거기 나와 있길 바랐다. 그러면 안심하고 도로에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발을 앞으로 뻗었다가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 결심했다가 망설이길 반복하면서 그 애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를 기다리면서 내가 죽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했다. 박살이 나서 길에 나뒹구는 몸뚱이와 새하얀 건널목 위에 새빨간 피가 뿌려지는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나는 상상 속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다양한 죽음의 파노라마를 경험했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경찰차와 구급차가 도착하여 사체를 수습하고 나면 귀신이 된 나는 핏자국을 지우느라 고생하는 청소부를 바라보며 미안해한다. 나는 그 길에서 매일 다른 죽음을 맞이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만 아는 이 자살 의식은 계속되었고 나는 그 여자아이를 끝내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