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존재’라는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 영화 <The Loved Ones> -

by 김지안

아이들은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예민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춘다. 부모의 불행과 무거운 가족 분위기는 아이의 삶에 그대로 영향을 미쳐 아이의 내면 깊숙한 곳에 죄책감으로 자리 잡는다.


영화 <러브드 원스>(감독 숀 번, 오스트레일리아, 2009)에는 그렇게 가족의 불행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할 권리’를 포기해 버린 아이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남자아이인 브렌트는 아버지를 태우고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다. 그 사고로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신경쇠약에 걸린다. 이후 이 가족 안에 자리 잡게 된, 어둡고 컴컴한 집안 분위기는 메마르고 초췌한 브렌트의 어머니와 브렌트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어머니는 아들과 대화하는 중인데도 아들의 방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고 문가에 서성이면서 이야기한다. 아들은 방 안에 불도 켜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브렌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그때마다 목에 걸고 다니는 면도칼로 자해한다. 고통을 가함으로써 아버지를 죽게 만들고 어머니를 불행하게 만든 자신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브렌트는 본인을 처벌받아 마땅한 존재로 여기며 행복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자신이 불행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브렌트는 졸업 파티 파트너가 되어달라는 롤라의 청을 거절하고, 화가 난 소녀는 브렌트를 납치하여 가혹하게 괴롭힌다. 의자에 사지가 묶인 채로 정신이 들었을 때 브렌트는 소리 치거나 난동을 부리지 않는다. 마치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피곤한 얼굴로 상황을 주시할 뿐이다. 발등에 못이 박히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울거나 소리치지 않으며 도망가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어쩐지 박해를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싶은 마음은 괴물을 만들어내고 그 괴물은 사실 브렌트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브렌트는 생생한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하면서 처벌을 받아들이고 속죄한다.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주인공의 어두운 자아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괴물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면서 동시에 아이가 환상 속에서 만들어낸 벌을 주는 부모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것은 진짜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그렇다고 믿고 내면화시킨 초자아의 목소리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롤라 역시 불행한 아이다. 여자아이는 자라면서 보통 아버지를 이상형으로 생각하며 그와의 결혼을 꿈꾼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적당한 시기에 아버지의 짝은 어머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 사랑을 포기하게 된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규율을 받아들임으로써 세상과 관계하는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금지된 사랑을 이성 부모가 제지하지 않고 받아주게 되면 아이는 영원히 아이의 환상세계에 갇혀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다. 롤라의 아버지는 딸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딸에게 투영하여 그녀를 자기 안에 잡아둔다. 그 때문에 딸은 정상적인 이성 관계를 할 수 없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의심스러울 때마다 아버지에게 붙잡힌 자신의 사랑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성 대상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남자아이를 잡아다가 줄로 포박하여 팔다리를 못 쓰게 만들고 이마에 구멍을 뚫어 우스꽝스러운 바보로 만들어버린다. 남자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후에 ‘역시 나에겐 아버지뿐’이라는 자족적인 결론을 내리고 안심한다. 그녀에게 자기 의심이 존재하는 한 이 불행한 강박적 행동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롤라에 의해 희생양이 된 남자아이는 여러 명이 있었는데 경찰관의 아들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아들이 죽은 충격은 그 가정 역시 덮쳐버렸는데 그것은 고스란히 그 집안의 딸 미아에게 전가된다. 시종 우울한 얼굴을 한 이들 부부는 딸을 대하는 태도가 강박적이고 부자연스럽다. 미아는 그런 부모의 태도가 견딜 수 없이 싫으면서도 죄책감으로 인해 쉽게 반항 하지도 못한다. 무시무시한 고딕풍의 화장과 댄스파티에서의 일탈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집에서 벗어나서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어 하는 그녀의 답답한 마음을 잘 드러내 준다.


우여곡절 끝에 브렌트는 롤라의 아버지를 죽이게 되고, 이에 격분한 롤라는 브렌트에게 '너의 엄마를 죽이겠다.'라며 칼을 들고 나선다. 그제야 브렌트는 정신을 차리고 그 집에서 탈출한다.


공포영화에서는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도와주러 온 많은 사람이 주인공을 구하기는커녕 괴물에게 죽임을 당한다. 주인공이 자기를 구원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찾아오는 구원의 손길은 주인공이 원치 않는 것이기에 오히려 위협으로 간주한다. 자신에게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한 그는 구원받을 수 없다. 결국 불행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기에게 행복을 허락해야만 얻을 수 있다.


브렌트에게는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 주고 삶을 살아갈 희망이 되어준 여자 친구 홀리가 있었다. 미아는 어리숙하지만 따뜻하고 배려심 있는 남자 친구 제이미가 위태로운 순간마다 그녀를 지켜주었다. 롤라에게도 그녀의 불안과 절망을 함께 버텨 줄 친구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영화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는 불행한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아이가 불행에 직면했을 때 안전한 느낌을 주는 든든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어쩌면 공포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시시해져 버릴지도 모른다. 연출은 대체로 무난하고 공포영화치곤 드라마가 안정적이고 아이들의 감정 상태를 섬세하게 따라간다. 전반적인 얼개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 사건’을 연상케 하지만 생각보다 엽기적인 장면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롤라의 아버지가 툴박스를 펼쳐놨을 때 ‘공구 통 살인마’의 다양한 고문 기술을 기대했다가는 매우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러브드 원스 (The Loved Ones, 2009)

공포 / 84분 / 오스트레일리아

감독: 숀 번

출연: 자비에르 사무엘, 로빈 맥레비, 제시카 맥나미, 빅토리아 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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