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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아무거나 하고 싶지 않아

by 너굴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인생 파업을 선언한 자발적 백수 여름(설현)과 삶이 물음표인 도서관 사서 대범(임시완)의 쉼표 찾기 프로젝트. 복잡한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찾아간 낯선 곳에서 비로소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딱 내가 퇴사 전에 했던 말이다. 그때의 나는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설레게 했던 여행도, 맛집도, 친구와의 만남도,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기쁘지 않았고 하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이 감정이 없어진 로봇 같이 느껴졌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곳을 다니며 내 영혼은 없어진 것 같은데, 나는 그 없어진 영혼만큼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출근을 하는지,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별의별 생각을 하며 정신이 딴 데로 가기 일쑤였다. 익숙한 일이었기에 영혼 없이 회사에서 일은 할 수 있었다. 나름 안정적인 직장이라 향후 10년간은 계속 다닐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할 수 없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내 결정을 도왔던 기준은 3가지였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퇴사를 결정했다.


1. 공백기 동안 사용할 자금이 충분한가? YES
미혼에 대출 없음(대출이 있었다면 쌩퇴사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셋집도 1년간 연장해서 최악의 경우 1년까지는 버틸 자금이 있었다.

2. 다시 이런 조건으로 일하기 어려운가? NO
회사 규모에 비해서 급여 수준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경력에 비해서는 그렇게 많이 받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기존 회사에서 사업기획부터 계획서 작성, 운영, 관리, 결과보고까지 전체 과정을 혼자 수행했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비슷한 회사로는 이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3. 급여가 줄어들어도 괜찮은가? YES
비슷한 조건은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람 일이란 것은 모르기 때문에 급여가 줄어들 것도 감수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른 업계로 갈 경우 급여가 낮아지는 것은 감수할 생각으로 퇴사를 했었다. 최악의 경우 다른 업계로 이직을 못하고 동종 업계로 이직해야 하는데 공백으로 연봉 협상력이 낮아진다면 그 또한 감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문자답을 하다 보니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이 회사를 억지로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명확해졌다. 극 중 여름이가 그랬을 것이다. 나를 돌보는 것이 우선이다.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나를 가장 심하게 욕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추천하지 않지만 병이 날 정도로 힘들다면 나를 먼저 챙겨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울증이 심한 분들은 회사를 그만두면 오히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서 더 큰 병이 생길 수도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런 경우라면 전문적인 상담이 꼭 필요하다.

"저는 사실 남들 기준에 맞춰 살다가 병이 났어요. 그래서 지금은 남 말고 저랑 친해지는 중이에요."


나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억지로) 아무거나 하고 싶지 않아'였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방향성 있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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