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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나의 40대

40대를 위한 30대

by 너굴씨

남자친구는 미래를 위해 30살에 영국 유학을 떠났고, 지금은 본인의 능력을 인정받으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그가 영국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말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예체능계에 몸담으며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않았고, 영어도 알파벳만 겨우 읽는 수준에 공부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들의 걱정이 무색하게, 석사만 하러 가서 교수 추천으로 박사과정까지 밟게 되었다. 그는 영어도 공부도 부족한 만큼 남들보다 열심히 했다. 그 힘든 시간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고 본인이 유학 가기 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꿈처럼 아득했던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유학 전에도 수입도 나름 만족스러웠고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었지만, 그 이상은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다고 한다. 20대가 자신의 30대를 만들었듯, 30대가 40대를 만들 테니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30대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을 봐서는 20대를 아주 잘 산 것은 아닌 것 같다. 적성에 맞지 않은 전공으로 대학생활 내내 방황하며 학교생활보다는 아르바이트, 대외활동을 하며 밖으로 돌았다. 그리고 직업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았다. 목표가 딱히 없었다. 기업에 어떤 직무가 있는지 4학년 졸업반이 되어서야 알았다. 자연과학계열인 내 전공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곳은 전공 무관뿐이었다. 전공 무관은 대부분 영업직무였고 영업에 대한 이해도 없었던 나는 넣는 족족 떨어졌다. 그 당시에도 내가 갈 곳이 있을까 싶었다.


막연히 4년간 전공을 배운 게 아까우니 1년 정도는 전공 관련 업무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가벼운 생각을 했고 정말로 전공 관련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업무에 전공지식이 크게 쓰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전공 관련 업계에서 1년가량 일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일하는 분야를 옮기고 싶어 국가에서 지원하는 전문인력양성과정을 1개월 동안 들었고 인턴과정 중에 기관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것이 두 번째 커리어의 시작이다. 기관/협회에서 2년간 일하다 보니 사기업도 공공기관도 아닌 제3지대에서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버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그렇게 또 기관/협회에 입사하여 약 5년간 일하게 되었다. 3년쯤 되었을 때 나름 안정적이었지만, 이 이상은 없을 것 같았고 갑갑함을 느꼈다. 나보다 5년 앞의 선배도, 10년 앞의 선배도, 나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고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협회는 공무원한테도, 기업한테도 철저한 을(병정)이다. 그리고 내가 있던 곳의 조직 구조상 대부분의 중요한 업무는 외주용역으로 진행되고 나는 그들을 관리만 하면 된다. 누군가는 관리직이니까 편하지 않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업무를 직접 해보고 용역으로 맡기는 것과 해보지도 않고 용역을 맡기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한창 일을 배워야 할 시기에 관리만 하면 일을 배울 기회가 많이 없다. 남이 해놓은 것에 숟가락 얹는 것이 내 일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나는 일을 하고 싶었고 일을 배우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릴 때도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몰두했던 일도 내가 고민하고 직접 프로세스를 만들거나 계획안을 만드는 일이었다. 외주업체에 일을 떠넘기기보다는 구성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다. 이 이유를 포함한 사유로 30대에 회사를 퇴사했다.


그렇다면 나는 40대를 위해 어떤 곳으로 가야 하고, 어떤 것을 해야 할까?


나는 어떤 40대를 살고 싶은가? 아직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것은 직장에 매몰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아래는 막연히 하고 싶은 일인데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할지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30대는 잘 살아내서 만족스러운 40대를 살 것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회사 타이틀이 곧 내가 아니라, 나 자체가 브랜드가 될 것이다.

일을 할수록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일을 할 것이다.

부업이든 뭐든 2곳 이상에서 급여를 받을 것이다.

전문가/자문위원/멘토로 적어도 한 곳에서는 활동할 것이다.

본업과는 다른 정말 의외의 취미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같이 있으면 든든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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