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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슬퍼하는 부모님을 보며 슬퍼하는 나쁜 손주

할머니의 영면 소식

by 너굴씨

이상하게 그날은 휴대폰을 책상에 두고 보지 않았다. 벨소리에 자주 놀래는 나는 항상 휴대폰을 진동모드로 해놓았다. 그날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며 넷플릭스로 '종이의 집'을 몰아봐서 그런지 편두통이 심해져 약을 먹고 일찍 자려고 누웠다.


밤 10시 자기 전, 잠깐 폰을 봤을 때도 잠금화면에 '부재중 전화'가 뜬 것을 보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렇게 한참 자고 있는데, '위잉 위잉' 진동이 울리기에 알람이라고 생각하고 끄려고 보니 엄마의 전화였다. 받으려고 하는 찰나 전화가 끊겨 다시 전화를 거니 통화 중이어서 바로 카톡을 보냈다.


'무슨 일이야?'


조금 뒤 답장이 왔다.


'할머니 어젯밤에 돌아가셨다. 내려와'


'아...'


올 것이 온 것이다.


할머니의 영면 소식

만 89세의 우리 할머니.

성한 곳보다 아픈 곳이 더 많으신 나이셨다.


할머니는 재작년부터 급격히 기력이 쇠하셨다. 작년에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건강을 회복하셔서 괜찮으신가 했다. 그렇게 아프셨다 괜찮으셨다를 반복하며 점점 하늘과 가까워지셨나 보다.


두 달 전, 회사를 퇴사하고 할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 갔었다. 너무나 야윈 모습에 적잖이 놀라고 마음이 아팠다. 고관절을 다치셔서 거동을 거의 못하시는 데다 귀도 잘 들리지 않으셨다. 옆에서 크게 말해야 겨우 들으셔 간호사분이 말씀을 전달해 주셨다. 그래도 인지능력도 기억력도 좋으셔서 손주인 나도 알아보시며 이름도 정확히 말씀해주셨다. 병상에 누우셔서 아프신데도 얼마 전 태어난 증손주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셨다.


"천기저귀는 꼭 3번씩 삶아야 해."


요즘 쓰지 않는 천 기저귀...

할머니는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고의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눈시울을 밝히는 엄마


"네. 그럴게요..."


몸은 쇠하셨지만 총기는 여전하셨다.


"내가 얼른 가야지. 이렇게 자식들 고생시키고" 할머니가 말하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건강하게 증손주 보러 가셔야죠."라고 말하던 엄마.


그게 내가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때 할머니의 야윈 모습에 놀라고 오랜만에 뵌 탓에 어색한 마음에, 따뜻한 말 한마디, 손녀로서 사랑스러운 말 한마디 못 해 드린 게 미련으로 남는다.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는 4시간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사셨을까?'

'할머니는 그렇게 원하는 천국으로 가셨을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셨으니 편히 가셨을까?'


그리고 마주한 할머니의 영정사진

사진 속 할머니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내려두고 편안한 모습이셨다. 원하시는 천국으로 가서 행복하시리라


사실 나는 할머니를 미워한 적이 많았다. 맞다. 나는 나쁜 손주였다. 나는 할머니와 멀리 떨어져 살고 열 번째 손주에 여자였기에 할머니와 교류가 많지 않았다. 명절 때 우리 엄마만 고생하고, 항상 할머니한테 최선을 다하는 우리 아빠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다른 삼촌, 고모들만 챙기는 모습이 미웠다. 아빠는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효자였다. 할머니가 아프실 때도 나서서 챙기는 것도 아빠였고, 아빠가 챙기니 다른 형제들은 은근슬쩍 떠넘겼다. 당연히 자식으로서 할 도리니 아빠가 하는 것이 맞지만, 그냥 아빠만 애쓰는 모습이 속상했던 것 같다.


할머니의 삶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픈 손가락을 더 챙기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었을 텐데 어린 마음에 미워한 내가 죄송스러웠다. 우리 집은 아주 풍요롭지는 못해도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한 부모님 덕에 당장 내일을, 다음 달을 걱정하는 삶은 아니었다. 반면 아빠에 비해 욕심이 많았던 삼촌들은 더 큰 수익을 쫓다 자주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었다고 들었다.


할머니는 가시는 길까지 그저 모든 자식, 손주, 증손주가 행복하길 기도하고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시려 했을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예식은 기독교식으로 이뤄졌고,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소명을 다하시고 때가 되어 가시는 것이니 슬퍼할 일이 아니다.'

'매일 우리 자녀들이, 그리고 가정이 행복하길 기도하셨고, 병상에 계시는 동안에도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이 할머니의 기쁨이오 소명이었을 것이다.'


뒤 이어 부른 찬송가가. 아빠의 목소리가 너무나 구슬펐다.

담담하게 흐느끼는 노랫소리


아무리 때가 되어 갔다고 해도 더 이상 품어줄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상실감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슬픔과는 차원이 다를 것도, 그 슬픔이 어떤 것인지 겪기 전에는 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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