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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머리카락 나이테

시간이 흘러 머리카락이 길고 길면

by 너굴씨

요즘 머리카락이 투둑하고 끊어진다. 긴 머리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머리카락 끝이 하나가 아닌 여러 갈래로 나뉘어있다. 가끔 보면 이게 머리카락인가, 나뭇가지인가 싶다.

멍 때리며 잠깐잠깐 상한 머리를 골라내는데 이 시간을 모두 합치면 하루에 30분은 족히 될 것이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머리카락을 보면 나도 모르게 골라내고 있다. 머리를 자를 때가 되었나 보다.


끝이 상한 머리를 보면 내가 지나온 시간이 머리카락에 다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에 기분전환하고 싶어서 조금 더 이뻐 보일까 해서 했던 염색,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서 한 검은색 염색,

머리 관리가 귀찮아서 한 파마,

중요한 행사 때마다 한 고데기,

여름 내내 햇빛에 노출되어 머리색이 바랜 것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머리카락 색이 나뉘어 있고, 은은하게 파마의 흔적이 남아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뒤섞인 나이테 같다.


예전에 드라마를 보면 이별, 아픔을 계기로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나 역시 단발 잘랐을 때 무슨 일 있냐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큰 변화라서? 아니면 머리카락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어서?

나이테처럼 시간이 깃든 머리카락을 자름과 동시에 과거를 잘라내고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는 다짐이 아닐까.

마음이 약해지지 않게 잡아줄 계기가 필요하다. 짧아진 머리를 볼 때마다 자를 때의 마음을 떠올리며 앞으로 나갈 힘을 얻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끊어지는 머리카락은 과거에 그만 머물러 있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이 아닐까? 비워야 채울 수 있듯이, 상한 머리를 잘라 내야 건강한 머리가 잘자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나도 내일 머리카락을 자르러 가야겠다. 머리카락도, 내 마음도 비울 건 비워 채울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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