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대리, 만년과장은 있는데, 왜 만년사원은 없을까.
이전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적게 받아도 괜찮으니까, 차라리 사원이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도 그럴게 사원과 대리의 급여 차이는 미미한 수준이었고, 급여와 업무량은 정비례하지 않았다. 급여 차이에 비해 업무량과 업무책임이 컸다. 조직의 규모가 작고, 특히 내가 속했던 팀은 인원이 더 적었기 때문에 대리부터는 책임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프로젝트를 알아서 이끌고 나가고 책임지길 바랐다.
한마디로 팀원이지만 팀장처럼 일해야 했다. 자잘한 일부터 예산 편성, 사업계획 수립과 평가까지 해야 하여, 좋게 말하면 사업에 대해 A to Z까지 다 경험할 수 있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사업을 밑에 있는 직원과 함께 하면서 업무를 분배하고 체크하면서 리더십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피드백을 받을 수 없어 답답했다. 알아서 답을 찾아야 했다. 팀장은 본인 업무로 바빠서 내가 맡은 사업은 나에게 일임하였고, 임원 보고도 직접 해야 했다. 보고한 내용이 임원이 원하는 방향과 달라 리젝 될 때 무엇 때문에 리젝 된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일단 이건 아니란다. 그렇다면 어떻게 작성하라는 것인지. 맨땅에 헤딩하듯 여러 번 수정을 거쳐 통과할 수 있었다.
그게 하나의 프로젝트였다면, 사원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이 그렇듯이 내가 맡은 프로젝트에서 대외적으로는 실무자지만, 내부에서는 책임자 겸 실무자였다.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위 과정을 거쳐 몇 년간 하다 보니 현타가 왔다. 나는 팀원이고 대리인데 팀장의 역할까지 일부 해야 하고, 급여는 사원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이럴 거면 사원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사원은 일단 시키는 것만 하면 되고, 업무에 대한 책임 부담이 덜 하니까. 딱 맡은 일만 하면 되는 사원이 부러웠다.
그렇다면 만년사원일 수 있을까?
이전에 사원급 팀원을 뽑을 때, 팀장님이 일단 본인보다는 어려야 할 것 같다고 1차적으로 나이제한을 두는 게 아닌가. 그리고 경력이 좀 길게 있으면 '사원'에 만족 못해서 금방 나갈 것 같다고 뽑지 않았다. 또는, 자기주장이 강할 것 같다거나 이런저런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며 서류에서 탈락시켰다. 직종을 바꾸어 재취업 한
다면 사원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뽑는 쪽에서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같은 직종에서 쭉 사원이라면?
연차가 쌓인 것에 비해 직급이 낫다면 그 역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납득할 만한 사유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능력부족으로 승진을 못했다고 느낄 것이다. 거기에 업무 수준이 올라가지 않고 똑같은 업무만 반복하다 보면 성취욕도 없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경력이 쌓인다는 건,
그만큼 내가 성장하고 내게 책임이 얹어진다는 게 아닐까.
만년사원은 만년초보라 없나 보다.
과장은 그래도 중급자 정도는 되니까 만년과장이라도 사회가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