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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이직 일기~ing

by 너굴씨
게으른데, 이직은 하고 싶어


요즘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 매출은 줄었고, 일도 확연히 줄었다. 경영팀에서는 돈이 없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많아졌지만, 무언가를 하려 하면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프다. 몰래 이직 준비라도 해볼까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행동으로 옮기면 이상하게 두통이 찾아온다.


왜일까.


사실 나는 게으르다.


'게으르다'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하지만 그 속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상처받을까 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게으른 척, 여유로운 척, 덤덤한 척하면서 나 자신을 피하고 있다. 이것이 팩트다.


스크랩한 채용공고는 즐겨찾기에만 저장되어 있고, 이력서는 수정을 미룬 채 마감일을 넘기기 일쑤다. 그나마 경력직이라 예전에 써둔 이력서와 경력기술서가 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이번엔 꼭 맞춤형으로 고쳐서 내야지' 다짐하면서도,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서류 탈락 메일을 받을 때나 마감일이 지나버린 공고를 다시 볼 때면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다.

“너는 왜 이렇게 항상 미루고 보는 거야?”

그렇게 자책하면서도, 또 다음 날이면 그대로다.

마감기한을 앞두고 허겁지겁 지원했기에, 그리고 지원하는 과정이 피곤해서 미루고 미뤘기에, 당연한 결과인 걸 알면서도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정말이지 나는 욕심쟁인가보다.


친구들은 내가 이직준비하는 걸 보면 "그만큼 절실하지 않아서 그래"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월급은 여전히 꼬박꼬박 들어오고, 당장의 생계가 불안하지 않으니, 간절함은 떨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취업 준비에 전념할 용기도 없다. 요즘처럼 채용공고가 뜸한 시기엔 더더욱 그렇다.


지금 내 나이는 30대 중반. 이직시장에선 애매한 나이다.


경력 10년이면 관리자급을 요구받고, 3~5년차는 여전히 실무형 인재를 선호한다. 연봉도 예전보다 낮게 책정된 곳이 많다.


'이 직무는 내가 했던 일 보다 안해본 일이 더 많은데?'

'아직 관리자가 되기엔 나는 부족한 거 같은데?'

‘내가 이 연차에 받을 만한 연봉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인정해야 하는 현실.


지금보다 경력이 잘 활용되는 곳

연봉이 너무 깎이지 않는 곳

출퇴근 1시간 이내

최소 10인 이상 규모의 조직


그리 까다로운 조건도 아닌데, 이걸 다 충족하는 회사를 찾는 건 의외로 쉽지 않다.

어렵게 발견한 공고를 자세히 보면, ‘1년 수습기간 적용’ 같은 조건이 붙어 있기도 하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경력직도 수습을 1년이나 둔다니? 두 곳이나 그런 공고를 봤다. 불경기란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채용시장이 삭막해졌을 줄은 몰랐다.


만약 그 1년이 지나고도 정규직 전환이 안 된다면?

그때 나는 이미 30대 후반일 텐데. 그 자리에 내가 있어도 될까, 확신이 없다.

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은 해야겠기에!!!!


게으름에 갇힌 지금의 나를 조금이라도 고쳐보기 위해 이 기록을 남겨본다.


이 글이 '계획'이 아닌 '행동'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두 가지


매일 채용공고 확인하기

경력기술서 한 문장씩이라도 수정하기


오늘은 작게라도 시작하는 날이 되기를.


게으른 나지만, 변화는 아주 조금씩 시작된다.

취준생도, 퇴준생도, 고민 중인 모두도. 우리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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