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세 마리
수영을 다시 다닌 지 만 6개월이 되어간다.
이제 슬슬 질릴 때가 되지 않았나. 영법은 다 배우긴 배웠으나, 뭔가 부족한 상태, 속도도 나지 않고 아직도 세 바퀴째에는 죽을 것처럼 헉헉댄다. 내가 기약했던 6개월 후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다른 분들의 '수영, 잼없어!'는 벌써 수차례 들었고, 썰물과 밀물의 한 물결이 지나갔으며 그럼에도 계속 다니는 분들은 늘지 않는 수영 실력과 재미없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야무지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를 외쳐 나를 감동시켰던 예순한 살의 특수학교 선생님도 이젠 강습하는 날에나 드물게 보는 분이 되었다.
그럴 때쯤 스물다섯의 강사는 영리하게도 우리에게 다이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배치기로 가슴과 배에 빨간 칠을 해도, 걷기 레인의 할주머니들이 뛰기만 할라치면 모두 대놓고 주목해도(심지어 잘 못 뛰면 박장대소하신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사실에 모두가 설레어한다.
물속에 뛰어드는 건 사실 겁나는 일이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반 귀여운 부진아는 상체를 숙이기만 하고 계속 정지 상태로 있어서 강사가 물속으로 당기려고 하자 체육관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강사가 "안 해! 안 해!" 할 정도였다.
내가 뭔가 잘하지 못하는 걸 만났을 때... 고장 난 인형처럼 될 때까지 뛴다. 내 안의 돼지 세 마리가 나를 추동하기 때문이다. 꽂혔다. 한다. 안 된다. 또 한다. 안 된다. 그냥 또 한다.
안 되는데 뭔가 달라졌다.
한다.. 변화가 느껴진다. 또 해본다. 조금씩 되기 시작한다. 계속한다. 끊임없이 계속한다. 된다. 되었다. 그리 되었다. 이제야 알고 보니, 나는 겁대가리를 상실한 게 아니라 무엇이든 내가 꽂힌 것을 끝까지 해보아야 하는 인간인 것이다. 끝까지 하고 그것에 대해 다 알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위험이고 뭐고 생각하고 느낄 겨를이 없는 거다.
전에 나는 이런 내가 너무 싫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왜 앞뒤 재지 않고 좌충우돌하며 힘들게 사는 걸까. 이틀 전의 만난 누군가의 모습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런 나를 싫어했지만, 그는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세상의 끝까지 갔다가 돌아와서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아니, 그런데 그러려면 계속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