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은 감정보다 더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없는데
공기가 굳은 흙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디가 어떻게 불편하냐고 묻는다면 딱히 가리키기도 어려운,
그저 내 안의 무언가가 아주 얇게 기울어져 있는 듯한 감각
오랫동안 그 기울기를 ‘감정’으로 받아들였다.
피곤해서 그런가,
어제 누군가 한 말 한마디가 마음에 남았던 걸까,
아니면 앞일이 막연히 걱정되기 때문일까
대답은 늘 표면에서 머물렀다.
살다 보니 깨닫게 된다.
흔들림은 감정이 아니라
그 표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파장의 미세한 어긋남이라는 것을
감정은 뒤늦게 떠오른 물결에 불과했다.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은
내면 깊은 곳에서 아주 조용하게 비틀리는 구조였다. 그 비틀림이 한참을 지나 감정으로 올라올 뿐이었다.
그래서 불편함이라는 것이 참 이상했다.
누군가의 말투 때문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말 아래 깔린 어떤 리듬이 내 호흡과 맞닿지 않았던 것이고,
어떤 날의 허무는
삶 자체에서 온 게 아니라
의미의 결을 잠시 놓쳤던 것이었다.
모든 흔들림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감정 위가 아니라
감정 아래에 있었다.
그럴 때 질문을 던져 본다.
“지금 느끼는 이 기울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일까,
이미 오래전에 어긋나 있던 내 안의 무언가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
그 질문을 붙잡고 바라보면
흔들림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방향을 바꾸려는 바로 그 순간에만 찾아오는 아주 정직한 신호가 된다.
그 날은
무너지기 시작한 날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는 날이다.
감정의 표면을 닦는다고, 그저 괜찮다고 자신을 달래어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감정 아래에서 아주 조용하게 움직이는 결을 보는 일, 그 결이 어디서부터 어긋났고 어디로 다시 이어지려 하는지를 살피는 일, 그게 흔들림을 읽는 더 적확한 방식이다.
여전히 흔들린다.
그러나 이제는 그 흔들림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흔들림은
감정보다 더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