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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람 Dec 20. 2017

얼어붙은 시간여행 겨울 바다 라이딩

속초 아야진항~가진항 왕복 30km  2017.12.16


바다는 위대하다.

많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놀랍도록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도 보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마력이 있다.  바다의 색과 깊이가 계절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걸 이번 여행으로  실감했다. 얼어붙은 계절의 바다는 눈이 시릴 정도로 진한 코발트색이었다. 다른 계절보다 확연히 다른 깊이감도 이번에 알았다. 지친 몸과 복잡한 머릿속을 남김없이 휘발시켜 결국엔 고요의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겨울 바다의 힘이다.


삼포 해수욕장




일시  :  2017.12.16 (토)

경로  :  속초 아야진항 ~ 문양 해변 ~ 백도해수욕장 ~ 삼포해수욕장 ~ 봉수대 오토캠핑장 ~ 송지호해수욕장 ~ 공현진 해변 ~ 가진 해수욕장  왕복 30km

시간  :   am10:00 ~ pm4:00 총 6시간 소요(식사및 휴식 2시간 포함)       

자전거 : MTB


일정 : 아야진항 출발

          문양 해변 (3.8km지점)

          백도해수욕장 (4.3km지점)

          삼포해수욕장(6km지점)

          봉수대 오토캠핑장(7.4km지점)

          송지호해수욕장(8.6km)

          공현진 해변(12.5km지점)

          가진해수욕장(15km지점)



올 겨울은 유난히 빨리 찾아왔다. 여느 해 같으면 아직 강이 유유히 흐를 시기이지만 빠른 겨울의 방문은 사방을 꽁꽁 얼려 놓았다. 이 추운 날, 겨울 바다를 눈에 담고자 하는 소박한 꿈 하나를 맘속에 품고 우리는 속초로 향했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달려 3시간 남짓, 속초 아야진항은 토요일임에도 고요했다. 이 항구는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몇 있는 호젓한 항구이다. 원래 지명은 '대야진' 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大'자를 쓰지 못하게 하는 일제의 정책으로 아야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아픈 사연이 있는 곳이다. 도착해서 바로 맞닥뜨린 바다의 풍경에 환호성이 나왔다. 눈이 시린 푸른빛,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바다는 더 진해졌다. 다행히도 이 날은 일주일여간 이어진 한파가 잠시 누그러져 영상의 기온이 되었다. 아야진항에 차를 세우고 단단히 준비를 한 후 고성 방향으로 출발했다.


오늘의 라이딩 코스는 '해파랑길'의 일부분을 달리는 것이다. 참고로 '해파랑길'은 통일전망대부터 오륙도 해맞이공원까지의 770km의 동해안 걷기길을 말한다. 우리는 아야진항 부터 통일전망대까지 왕복하고자 했으나 낮은 기온과 바닷바람을 고려해 겨울바다를 눈에 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기 위해 동해안 자전거길을 따라가되 자전거길이 해안과 떨어져 있다면 해안도로를 선택하기로 했다. 서있거나 쉴 때는 잠시 한기를 느꼈지만 달리는 중에는 춥지 않았다. 아야진항을 빠져나와 조금 달리면 '동해안 자전거길' 이정표가  나온다. 라이딩 내내 이 이정표는 친절히 길을 안내해 주었다.


아야진항에 도착해 마주한 겨울바다 / 곳곳에 잘 보이는 자전거길 이정표


표지판을 따라 동해안 자전거길로 들어섰다. 자전거길은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노면 상태도 좋았고 데크도 있어서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주었다. 해변을 끼고 달리는 길이 이어진다. 바람은 때때로 세지만 차가운 바다가 주는 신비한 기운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렇게 달리면 문양해변과 백도해수욕장을 지나 금방 삼포해수욕장에 도착한다.


문양 해변과 백도해수욕장 부근


삼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바다는 더 진해진 코발트색이다. 삼포라는 지명은 황석영의 '삼포로 가는 길'이라는 소설로 익숙해 있지만 실은 그것과는 관계가 없다. 이 곳은 동해안에서는 드물게 수심이 완만해서 가족단위의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삼포해수욕장을 지나 봉수대 오토캠핑장을 거쳐 송지호 해수욕장까지는 2km 남짓 가까운 거리이다. 자전거길은 곧고 평탄하다. 스쳐 지나가는 근사한 풍경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삼포해수욕장 풍경


송지호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역시 깊은 푸른빛의 바다가 우리를 맞이한다. 이 곳은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송지호라는 호수로도 유명하다. 호수 주변으로 둘레길도 조성되어 있고 자전거길은 이 둘레길 일부를 경유한다. 송지호는 찾아오는 다양한 철새들로도 유명하여 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관망타워도 있다. 우리는 자전거길에서 잠시 벗어나 송지호 관망타워 옆 나무데크길을 달려보았다. 꽤 긴 거리의 데크였다. 상태도 좋고 바다를 바로 조망할 수 있었다.

다시 자전거길로 들어서면 이번엔 송지호가 보인다. 호수는 벌써 얼어 있었다. 겨울철 한낮 태양빛은 약했지만 그 빛에 비춰진 얼어버린 물결무늬는 신비스러움을 준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적막했다. 한참을 서서 사방에 드리워진 고요를 마디마디로 느꼈다. 아쉽지만 송지호를 뒤로하고 라이딩을 이어갔다. 소나무 숲 사이로 자전거길이 뻗어 있다. 바닷가에서 만난 호수의 풍경에 생경함을 느끼며 공현진 해변을 항했다.


 송지호 둘레길 데크 / 얼어 붙은 신비스런 송지호의 풍경


공현진 해변은 자전거길이 아니지만 해변을 따라가기로 한 오늘 여행의 원칙에 따라 거치게 된 곳이다. 역시 옳은 선택이었다. 해변의 고즈넉함이 좋았다. 긴 거리는 아니지만 추위를 이기며 쉼 없이 왔던 터라 휴식이 필요했다. 해변을 조망할 수 있는 카페에서  향 좋은 커피를 마시며 달달한 휴식을 취했다. 30분 이상을 충분히 쉰 후 가진해수욕장을 향했다.

가진해수욕장옆 가진항에선 도루묵 낚시가 한창이었다. 지금이 제철인 이 생선은 톡톡 터지는 알이 일품이다. 옛부터 서민의 생선으로 불릴만큼 가격도 착하다. 이 생선은 원래 그냥 '묵'으로 불리던 생선이었다. 선조가 피난 시절 이 생선을 처음 맛보고 너무 맛있어서 '은어'라 칭하도록  어명을 내렸다. 그러나 전란이 끝나고 다시 궁궐로 돌아와 이 생선을 먹으니 피난시절 그 맛이 아니었다. 어려울 때의 입맛과는 체감이 달라진 때문이다. 이에 선조는 '도로 묵이라 하여라'라는 어명을 내렸고 그때부터 도루묵이라 일컬어졌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가진해수욕장은 시야가 확 트인 조망을 자랑한다. 이미 푸른 바다 빛에 마음을 뺏겼지만 또 한차례 환호가 절로 나왔다. 오늘 지나온 많은 해변처럼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넉넉함이 있었다.


공현진 해변길 표지판/ 오늘여행의 종착지인 가진해수욕장, 가진항


겨울 바다 라이딩.

마치 얼어버린 시간속을 달리는 여행같았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그러나 해보면 진한 추억이 켜켜히 쌓일 수 있는 여행.

바다는 푸르렀고 깊었으며 웅장했고 고요했다.

이 경이로움을 라이딩을 통해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것인지.


몸은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던 시간.

겨울 바다가 한해의 끝에 준 보석같은 선물이었다.


해변길을 달리는 라이딩
송지호부근의 데크길


송지호 호수에서


혜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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