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작렬하는 한낮 태양 아래를 걷다 보면 선선한 그늘 아래서 잠시 쉬고픈 욕구가 생긴다. 더위를 피해 쉬어가는 그늘처럼 우리도 그런 그늘을 하나씩 달고 산다. 그것이 바로 그림자,
이 책은 재물에 눈이 멀어 그림자를 악마에게 넘기고 생각지도 못한 고통의 회오리 속으로 들어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는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작가이자 식물학자인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귀족 출신이지만 프랑스혁명 시 독일로 이주하여 평생 독일에서 활동했다. 이 소설외에 시집 <여자의 사랑과 생애>이 있고 이 시집은 훗날 음악가인 슈만에게 영감을 준 작품으로 유명하다.
샤미소 탄생 200주년 기념우표 1981.1.15 베를린
페터 슐레밀이라는 이름의 한 남자는 우연히 동석한 사교모임에서 회색 옷을 입은 한 남자와 만나고 그의 미스터리 한 마법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모임이 끝나고 자리를 나온 슐레밀에게 그 회색 옷의 남자는 그림자와 마르지 않는 금화 주머니의 맞바꿈을 제안하고 그림자를 그다지 중요치 않던 슐레밀은 그 제안을 수용한다.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고통 속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삽화) 슐레밀의 그림자를 거두는 회색 옷의 남자
그림자의 부재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오해받고 사랑까지 실패해 후회 속에서 암흑의 나날을 보내는 슐레밀에게 회색 옷의 남자는 다시 또 다른 제안을 한다. 가져갔던 그림자와 죽은 후 영혼의 맞바꿈이 그것이다.
슐레밀은 과연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슐레밀을 보고 사람들은 그의 넘치는 재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가 없음에 더 놀라고 그를 외면한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그림자가 있어야 하는데'라는 말과 함께
작가는 그림자의 의미를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작가는 전면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하는 인간성의 부분으로 그림자를 이야기하고 있다. 평소에는 그리 주의를 기울이지 않지만 결정적 순간엔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가치로 표현된다.
세상을 살면서 맞닥뜨리는 여러 상황에 사람마다 다르게 대응하지만 그 와중에도 끝까지 지켜져야 할 가치들이 있다. 이런 인간성이 보존되고 지켜져야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인 거다.
슐레밀이 그림자 없는 고통스러운 인생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자신의 인생 후반을 전개하는지 역시 흥미롭다.그림자를 판 자신의 실수로 힘든 시간들이 찾아오지만 지신의 의지로 또 다른 생을 전개해 가는 마무리가 우리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해 보이는 스토리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무더운 여름날, 그렇게 무더운 우리 인생에 청량제 같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