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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케밥 냄새가 나던 방

6. [외전] 서울살이 쉬어가기: 프랑스 시골살이

by 지구

뜨끈한 천장과 뻥 뚫린 창의 방에서 나와, 두어 달간 본가에서 머무르다가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서 반년간 지내다 왔다. 서울살이는 아니었지만, 첫 외국살이이자 이어지는 자취 경험이었기에 시간의 흐름대로 외전으로 반년간의 프랑스살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고 하면 어느 도시에서 머무르셨어요? 하는 물음이 돌아온다. 하지만 도시 이름을 이야기하면 아무도 모르는, 그런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는 잠시 살았었다.


프랑스 북서쪽, 브르타뉴 지방에서도 거의 서쪽 끝에 있는 캥페르(Quimper)에서 지낼 때에도 방 하나의 원룸에서 지냈지만 워낙 시골이라 수업 가기 외에는 할 일이 거의 없어서 내 방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KakaoTalk_20250531_152157985.png 사진 기준으로 오른쪽에 침대가 있고, 맞은편에 옷장이 있던 내 캥페르 방


내 방은 대형 기숙사 단지 옆의 원룸이었는데, 1층에는 케밥집이 있고 2,3층에는 내 방 같은 방이 층마다 3개씩 있었다. 내 방은 옆방보다 작았지만 나는 그 아늑함이 퍽 마음에 들었다. 서울에서 살 때와 달리 어차피 반년 산다고 생각하니 짐은 캐리어 하나만큼 밖에 없었고, 혼자 자기에 싱글 침대는 충분했으며 높은 아일랜드 식탁으로 나름 주방과 분리가 되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방 문을 열고 나가 복도에 있었지만 양치와 세수는 방 안의 세면대에서 해결했고 같은 층에 사는 사람들과 생활패턴이 달라 이용시간이 겹치지 않아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앞서 말했듯 1층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이민오신 것 같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케밥집이 있었는데 그 가게가 우리 집 근처에서 가장 일찍 열고 가장 늦게 닫는 가게였다. 프랑스에서는 다른 많은 가게들이 영업시간이 아주 짧았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유학생에게는 5유로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집에서 케밥을 자주 먹었다. 한국에서 온 다른 친구들은 주로 대형 기숙사 단지에 살았기 때문에 친구들은 나를 케밥집 위에 사는 지수, 줄여서 케수라고 불렀다.


부지런한 사장님을 이웃으로 둔 덕에 내 방에서는 항상 은은하게 케밥냄새가 났지만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타지에서 와서 그들의 음식을 파는 부지런한 모습을 볼 때면 낯선 곳에서 혼자인 것 같지가 않았다. 이번 방도 크기는 작았지만 창문만큼은 크게 뚫려있었는데, 내 방은 건물 뒤 쪽으로 창이 뚫려있어 케밥집의 뒷마당이 잘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희한하게 같은 하늘인데 다르게 느껴지는 유럽의 새파란 하늘과 캥페르 지역의 비슷하게 생긴 지붕들이 보였다. 여기서 바라보는 하늘이 좋아서 여기에서도 나는 하늘을 많이 바라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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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1층에 있던 케밥집과 내 방에서 바라보던 창문 밖 풍경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구 반대편의 작은 방에서 나의 취향이 많이 만들어지고, 깨달았던 것 같다. 큰 창을 좋아하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벽이 허전해 유럽의 미술관을 다니며 모은 엽서를 하나하나씩 침대맡 벽에 붙이다 보니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한눈에 보였다.

KakaoTalk_20250531_151929790.jpg 침대 맡에 턱이 있어 인형들도 두기 좋았다


그뿐 아니라 배달음식이나 패스트푸드가 케밥 외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요리도 자주 해 먹었는데, 이때 이후로 스스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많이 생기고 요리에도 재미를 붙였다. 그전에 서울에서 살 때에는 방보다 밖에 재미있는 게 훨씬 많았기 때문에 방 안에서 혼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잘 몰랐었는데, 이 방에 살면서 그런 것들을 배웠다. 오래 머무르다 보니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좋아하는 것들로 더 채우게 되며, 그러면 더 좋아져서 방안에서의 시간을 온전한 휴식으로 누릴 수 있었다.



KakaoTalk_20250531_151958784.jpg 작은 방에서도 크리스마스를 기쁘게 맞는 법도 배웠다.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엄청나게 큰 명절 같은 느낌인데, 12월이 되며 온 거리가 크리스마스로 물들자 내 방도 크리스마스 느낌이 나게 꾸미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곧 떠날 사람이며 내 방은 작았다.

그래서 문구점에서 미니 트리를 사서 조립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유행하는 물건이지만 그때 처음 알았던 '어드밴트 캘린더'(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까지 매일 작은 선물을 여는 달력)도 마트에서 사서 하나하나 열어보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이렇게 작은 방에서도 나름의 명절을 맞는 행위를 하니 타지에서 맞는 타국의 명절이 그리 외롭지만은 않았다.


다음 글은 반년이라는 짧은 기간임에도 많은 것을 느낀 프랑스살이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이야기를 나눠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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