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B구 천장이 기울어진 꼭대기층 (하)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이 방의 진짜 문제는 천장이 기울어진 것도, 화장실에 갈 때 신발장을 지나야 해서 슬리퍼를 신어야 했던 것도(어차피 몇 달 뒤엔 맨발로 다녔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 헉헉대며 오르내려야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방의 천장이 그 건물의 지붕이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기울어진 것이 그 복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 건물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있었고, 내 방 천장이자 빌라의 지붕을 햇볕으로부터 막아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옥탑방은 아니었지만 옥탑방처럼 태양열을 그대로 받아 내 방은 빛과 열을 받는 대로 뜨거워졌다.
2월에 이사할 때는 몰랐으나, 점점 날씨가 더워지면서 뭔가 이상했다. 내가 그동안 살았던 집들보다 집이 너무 쉽게 뜨끈해졌다. 아마 바로 전에 살던 집은 반지하였으니 항상 서늘한 기운이 있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해질 무렵 언덕과 계단을 올라 방에 들어오면 낮동안 데워진 집은 열기를 내뿜었다. 방이 작았긴 해도, 작은 벽걸이 에어컨으로 낮 내내 달궈진 방을 식히기엔 한참이 걸렸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해는 길어졌고, 집을 비우지 않아도 오전 수업이 없는 날이나 주말에도 아침 9시만 되면 눈이 저절로 떠졌다. 더워서 늦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여름이 오고 나서 낮 시간에는 집에 거의 머무를 수 없었다.
언덕 위에 있는 기울어진 꼭대기층 방을 계약할 때에 '다리가 아프겠군, 허리가 아프겠군'하는 문제는 생각했지만 태양열에 방이 절절 끓는 문제는 생각을 못했었다. 다시 한번 방을 볼 때는 정말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다행히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니 이 문제는 지나갔다.
글을 쓰려 예전 사진들을 들춰보니, 이 방에서는 생각보다 즐거운 추억들이 많았다. 방을 계약할 때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지만, 부엌 옆에 난 큰 창으로 보이는 뻥 뚫린 풍경이 보기 좋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대로와 차들, 하늘이 서울에 온 것이 실감이 되어 종종 날이 좋은 날이면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반지하에 살 땐 몰랐는데, 뻥 뚫린 창을 좋아하는 걸 알았다.
그토록 원하던 학교 바로 앞에 살았으니 등하교를 아주 빠르게 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가장 가까운 건물은 뛰어서 5분 정도 걸렸으니, 1교시 수업이 있을 때 아주 좋은 점이었다. 과제가 있어 축제 기간에도 공연을 보지 못했을 때에도 방에서 초대가수들의 무대를 귀로나마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 앞 자취촌이다 보니 누가 사는지 알거나 인사를 나누지는 않아도 이웃들이 거의 학교 학생들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전에 모르던 조용한 동네에 살 때보다는 집에 가는 길이 덜 무서웠던 것 같다.
월드컵 시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늦은 밤, 이제는 TV가 옵션이 아니라 버벅거리는 노트북으로 혼자 방 안에서 축구 경기를 보던 중이었다. 우리나라가 골을 넣었을 때, 제각각의 타이밍으로 울려 퍼지는 환호성이 벽과 창문을 타고 들려왔다. 혼자였지만, 학우들과 함께 축구 경기를 보는 것 같아 괜히 기뻤던 기억이 난다.
언덕 꼭대기에 있던 만큼 건물까지 가는 길도 다양했는데,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종종 가던 건물 뒤편의 계단 길에는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시는 분이 있었다. 나는 밥을 챙겨주시는 마음과 그것을 별말 없이 지켜보는 이웃들의 마음에 따스해져 나 혼자 그 계단을 '야옹밥 계단'이라 부르며 정겹게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이 있었지만 몇 달 뿐이었고, 다른 장점들로 나름 정이 든 집에서 이번에는 나의 계획 때문에 1년 반 만에 이사를 나오게 되었다. 2학년을 마치고, 하고 싶던 봉사활동이 있어 휴학한 뒤 4월까지 봉사활동을 했다. 그 후 2학기에는 계획했던 외국으로의 교환학생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5월까지만 이 방에서 지내고 퇴거하게 되었다.
확실하지 않았던 계획이었기에 2년 계약을 채우지 못하고 먼저 퇴거하게 되었지만, 다행히 학교 앞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방학인 7월에 바로 방이 나가게 되었다. 여기서 또 내가 살고 싶은 집도 중요하지만 남이 바로 살고 싶어 하는 집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다음 편은 시간의 흐름대로 외전 - 서울살이 잠시 쉬어가기, 반년 간의 유럽살이로 찾아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