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좋아하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들 치고 노래방 싫어하는 사람이 드문 것 같다. 확실히 흥의 민족이라서 그런가?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하는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 정말로 노래와 춤을 좋아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또 자세히 (얼마나 더 자세히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할 테지만, 립싱크가 있던 시절 가수에 도전을 안 해본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한다. 어렸을 때조차 나는 자기 객관화가 무지하게 잘 되어있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간다 해도 자신감 있게 오디션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노래방은 남부럽지 않게 자주 다녔다.
오늘은 남편과 거의 결혼 후 처음으로 노래방을 다녀왔다. 근 몇 년간, 그래도 연애 때 종종 갔던 노래방이었는데 친구들과도 자주 가지 않게 된 것처럼 우리도 가지 않았다. 어릴 때는 숨겨진 나의 매력을 보여주거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또는 광기를 나누기 위해 갔던 노래방.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이유들로 그곳을 찾는 때가 있다는 점에서 신비한 매력을 지닌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친구들과 오천 원을 모아 학교 바로 옆 노래방에서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를 떼창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천 원 한 장에 붕어빵 하나, 노래는 두곡을 부를 수 있다. 요즘 노인코래.. 아니 코인노래방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신용카드 결제나 간편 결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 수 있었다. AI가 영상도 만들어주는 세상에 새삼스럽지만 노래방에서도 세상은 저만치 멀리 달려가고 있구나 체감했다. 일반노래방만 있던 시절 새롭게 부상하던 코인노래방이 생겨서 제일 좋았던 건 선곡에 꽤 많은 시간이 드는 나에게 과연 안성맞춤인 곳이었기 때문이다. 시간 스트레스 없이, 노래방 사장님과 서비스로 밀당하지 않아도 되고 아쉬울 필요도 없다.
너무 오랜만에 방문해서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 조금은 막막했다. 인기차트를 뒤지고, 신곡안내까지 차례로 훑어본다. 결국 유튜브 뮤직에서 최근 좋아요 누른 곡들을 굳이 찾아 꾹꾹 검색해 봐도 나오지 않는 것들이 태반이라 그 점은 속상했지만 결론적으로 스트레스도 풀고 근래 들어 가장 많이 웃고 왔던 하루임에 틀림없다. 노래방은 역시 잘 부르려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아마도 제일가기 싫은 노래방 조합은 회식 후 상사와 가는 노래방이 되시겠다.)
사실 이곳은 노래도 부를 수 있지만 의도하지 않아도 사람을 웃기는 것이 어렵지 않은 장소다. 팝송을 주로 부르는 우리는 요즘 싱잉랩인지 뭔지도 모를 가사들을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건 흡사 영어 보고 읽기 시험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듣는 것과 부르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천지차이라 더듬더듬 거리기 일쑤였다. 옆방에서 보컬선생이라도 된 마냥 친구에게 이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혼내는 친구가 있건, 우리 같은 혀꼬부랭이들이 있건 들리면 서로 깔깔깔 웃고 즐길 뿐 다시 열성적이고 진지한 노래 부르기가 이어지는 그 환경이 살아있는 생생한 코미디의 현장이다. 최근 로또에만 쓰던 현금 만원을 다소 열성적으로 쓴 뒤 살짝 쌀쌀해진 거리로 나왔다. 서로의 웃겼던 포인트를 절대로 잊지 않고 영원히 놀릴 것을 다짐하며 집으로 향했다.
(러시아 발음 같았던 영어 발음을 놀리며)
"시가Rrrrrrr렛~~~ 우하하하"
"우리 어릴 때는 A4용지에 가사 뽑아서 봤잖아.
그래서 그런지 그때 노래들은 그래서 아직도 기억에 잘 남나 봐"
"가사 밑에 해석까지 뽑아서 봤지"
"아주 딥하게 음악을 제대로 음미했었네 그려~"
"근데 그... 마이크가 별로지 않았어?
내가 좋아하는 마이크는 아니었어.
심이 살아있게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