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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Mar 16. 2024

돈과 조금은 친해졌습니다

 20대 시절 제일 안정적이고 활발히 벌고 있을 때에도 돈이란 그저 벌고 소비하고 은행을 통해 모으는 것이 전부라 생각했다. 첫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영업당한 신용카드를 만들고 늘어나는 카드값에 익숙해지던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이 있듯 사고 싶은 옷과 화장품에 아끼지 않고 소비했다. 한마디로 마음 가는 대로 물 흐르듯 돈을 대했다. 가장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면, 가스라이팅이 심했던 상사가 내가 정규직이 되자마자 회사에 오래 잘 다니려면 할부를 무진장 많이 긁어놓아야 하니 마음을 쏙 뺏을 디자인의 신차를 지금 당장 뽑으라고 종용했을 때다. 앞으로 이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무지하고 해맑았던 그때 내가 몇천만 원짜리 신차를 패기 있게 결제했었다면 아직까지도 그가 바랐을지도 모를 노예가 되어있으리라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집을 옮기던 것, 어떤 지역의 학교에 전학을 가게 된 일 등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지 못하던 지난날과 달리 경제관념이 생기면서 과거 사건들마다 어떤 희생과 희망, 좌절이 있었는지를 늦게나마 짐작하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초반에는 그런 사정을 모르던 철없던 시절에 대한 회한과 부담이 원망으로 다가와 우울해진 적도 많다. '부모님의 노후는 괜찮은 걸까?' '내가 과연 나중에 부모님을 모실 정도의 여력이 될까?' '부모님이 가정의 경제사정에 대해 깊이 말해주며 키우지 않아 이렇게 늦게 배우게 된 걸까?'...

 하지만 지난 시절과 남 탓만 해봤자 내 앞에 놓인 삶은 건강하게 전진할 수 없었다.



 다행히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변화를 통해 좋든 싫든 큰돈을 다룰 일들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먼저는 그와 결혼을 준비하며 작은 사이즈여도 좋으니 우리가 함께 먹고 누울 공간을 찾는 것이 최대의 난관이었다. 이후 정부에서 빌려주는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힘들게 일해왔지만 쓴 돈에 비해 저축한 돈이 얼마나 적었는지 깨달았다. 독립해 본 적도 없어서 당장 보증금, 계약금만 내려고 해도 큰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 중 하나다.


 어찌어찌 운 좋게 당첨되어 많은 금액을 들이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곳을 만나게 되었다. 결혼을 가능케 해 준 소중한 집이지만 진정한 우리 집 아닌 듯한 그 작은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며 '우리 집'에 대한 생각들은 새록새록 솟아났고 로또를 매주 사듯 로또나 다름없는 청약을 매번 도전했다. 수없이 실패를 경험하며 여기에만 배팅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부동산 관련 콘텐츠나 강의, 책을 모조리 섭렵하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발로 뛰며 흔히 말하는 임장을 다니며 자료를 정리했고 몇 년간의 고군분투와 기다림 끝에 다행히 우리만의 첫 보금자리를 얻게 되었다.

 이 경험을 만들어내기까지 내가 가진 수많은 고정관념들을 버려야 했다. 특히 자란 환경 때문인지 교육시스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돈에 대해 말하면 세속적인 사람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고, 되도록 돈 얘기는 덮어놓고 흐르는 대로 살자는 마인드였던 나였다. 과정에서 짝꿍과 공동가계부를 작성하기도 하고 혼자일 때보다 둘이 크게 모으는 재미 또한 알게 되고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돈과도 이전보다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엄마의 지인은 과도한 빚과 주식투자로 망했고 그로 인해 이제는 연락도 안된다는 얘기도 귀가 따갑게 들어왔기에 주식에 대한 얕고 부정적인 인식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 주식전문가의 미디어 속 모습은 너무나 사기꾼스럽기까지 했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듯 알고 싶지도 않은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였던 주식. 이제는 매일 아침 경제신문을 읽고 여러 모니터에 차트를 띄워놓고 마치 트레이더가 된 마냥 열심을 쏟은 지 한 달이 되었다. 나의 원칙을 지키며 수익을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이라니 예전의 내가 보면 정말 너 세상에서 썩어버렸구나 하겠지만 이미 자본주의 세상을 알게 된 나는 돌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후회스러운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껄무새 같지만 조금 더 일찍 알았어도 좋았을 걸!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오늘날 예전보다야 조금 더 가치 있게 돈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 것은 사실이긴 하나, 돈뿐만이 아니라 무조건 유용한 가치만을 쫓고 싶지는 않다. 무용한 것도 마음 흐르는 대로 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 다만 돈을 쓰고 싶은 이유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많은 관심을 끈 트렌드처럼 '부자'가 되는 것 자체는 여전히 내 꿈이 될 수 없지만 돈에 대한 자세가 달라진 것은 인정하는 바이며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이 괴로운 5일의 직장생활에서 벗어나는 길이 무엇인지, 어떤 곳에 적절히 쓰고 투자해야 할지를 아는 것이 현재 관심사 중 하나다.


 돈과 적절한 관계를 맺고서부터는 꽤 진지하고 고통스럽지만 또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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