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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Mar 09. 2024

단골 1인 미장원 예찬서

내향형 인간에게 꼭 필요한 곳



 피부가 민감한 나는 이마에 자꾸 닿는 앞머리가 끼치는 영향이 두렵기도 하고 미용실에 자주 방문하게 되는 것이 귀찮아 몇 년간 기르기만 한 상태였다. 어느 날 친구들이 못 봐주겠는지 가위를 직접 들고 나와 이마가 힐끗힐끗 보일 정도의 커튼을 내려주었다. 너 꼭 앞머리를 자르고 다니라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니 앞으로 꼭 머리를 잘라줘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과 동시에 자른 앞머리가 불편하기도 하고, 분위기가 더 나아진 것도 같아 알쏭달쏭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신경 쓰지 않는 와중에 앞머리는 다시금 귀옆에 가지런히 꽂혀 길러지고 있는 중이었다. 흔히 말하는 얼굴권태기 타이밍이 온 건지 모르겠을 그때, 단골 미용실 문을 두드렸다. 이유는 못 찾겠으나 머리카락도 예전만큼 건강하지 않고, 가뜩이나 새치가 있어 추레해 보이는 것 같다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늘 그렇듯 진지하게 들어보던 원장님은 지금 머리도 예쁘니 다시 앞머리를 조금만 잘라봐 주겠다고 했다. 이것 때문에 피부가 더 불편하지 않다면 그때는 용기 내서 조금 더 잘라보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이마 트러블들은 내 디폴트값이었는데 앞머리 탓을 한 건지도 모를 만큼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나만의 단골 미용실을 찾는 건 힘든 일이다. SNS에서 유명하고 핫한 실력자를 찾자니 금액도 금액이거니와 대부분 서울 중심부여서 멀리 나가야 하는 그 수고 자체가 이미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요즘에 1인 미용실이 아무리 많아졌어도 그중에서도 나와 소통이 잘 되는 곳을 찾으려면 또 많이 경험해 봐야 찾을 수 있다.

 보통은 커트만 하려고 가지고 간 머리 사진은 예상외로 꼭 펌을 해줘야 하는 머리여서 지금 당장이라도 계획에 없던 펌을 해야 하나라는 중압감이 들었던 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물론 필요한 부분을 알려주는 차원에서는 이게 나쁘다거나 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들었던 이야기들은 대개 원치 않아도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지적받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새치가 있으면 염색을 주기적으로 해줘야 하며 푸석하고 건조해 보이면 다음에는 영양관리를 꾸준히 받아야 한다는 조언들은 괜히 듣기 싫은 소리로 들리기 일쑤였기에 미용실은 으레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하는 곳이라 여긴 적도 많다.

 

 앞서 말한 나의 단골 미용실은 1인 미용실이고 예약도 힘들어서 당장 갈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미루고 미뤄서라도 이곳에 가는 이유가 있다. 나 같은 내향형 인간은 대형 체인점 미용실보다 한 사람만 상대하는 미용실이 백배는 낫지만 둘만 있는 게 숨 막히는 사람과 일대일로 있고 싶지는 않은데 이 원장님은 사람을 정말 편안하게 해주는 데에 능력이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허나 사람만 좋다고 영업이 성황할리도 없다. 지금 머리모양이 질리긴 하는데 기분전환을 하고 싶다거나 설령 딱히 원하는 시술이 뭔지 모른 채 방문한다 해도 찰떡같이 알아차려주는 실력자다.


 아무리 풀예약이 차있는 자영업자라지만 1인 미용실 입장에서 예약 한 시간 한 시간은 무척 소중한 시간일 텐데도 그녀가 나를 일찍 돌려보내는 날은 그 덕에 밥 먹을 시간이 생겼다고 말하며 꽤 자주 이런식으로 비용을 받지 않았다. 이쯤 되면 내가 그냥 정수리 냄새가 심해 미용사로서 만지고 싶지 않은 머리여서 내쫓는 건가 싶을 정도다. (그래도 갈 때마다 반갑다고 좋아해 주시니 이건 아닐 거다...) 주로 단골들한테 이 정도는 한다며 앞머리 정도 자른 거라는 핑계로 머리를 다듬어도 돈을 받지 않고 돌려보내버린다. 거진 커트만 하러 가는 미안한 단골이지만 본인의 철학 때문이라니 억지로 더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짧은 시간 동안 잠시 눈을 감고 그녀만의 철학과 노하우가 담긴 가위질이 몇 번 오간 사이 거울 속 모습은 어느새 꽤 만족스러워져서 뭔가 더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진짜 마법을 볼 수 있다.

 한 번은 그녀가 키우는 강아지의 간식으로 마음의 빚을 청산하려 하긴 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재방문을 해서 머리에 작은 변화라도 주고 말겠다는 의지가 샘솟게 된다. 그런 날은 나도 모르게 문 앞에서 "선생님 저 머리 정말 더 할 거 없어 보여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파마라던가 염색 어쩌고... 해보지만 실없는 소리다. 원장님의 스타일은 단순히 정해진 미의 기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손님이 평소 추구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발견해 내는 눈썰미로 언제나 만족스러운 합의를 이뤄낸다.


 그때그때 알 수 없는 생각과 마음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줄 뿐 아니라 때로는 고민스러워 주눅 들어있으면 상대방의 장점을 기가 막히게 발견하고는 자존감 지킴이의 역할까지 해주니 이곳을 다시 찾고 싶은 건 당연하겠지 싶다. 자주 보지 않아도 편안한 친구같은 단골 미장원이 있어 마음 한편이 정말 든든하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제 머리 부탁드립니다!







"원장님이 잘라주시면 길렀을 때도 더 예뻐요"

"와, 그거 최고의 칭찬 아니에요? 기분 너무 좋네요"

- 기를수록 마음에 들어서 더 자주 방문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하지만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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