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멋부림에 대하여
얼마 전 봄바람이 들었는지 잘 구매하지 않던 봄옷 하나를 신중하고도 신명 나게 질렀다. 평소 즐겨 입던 브랜드의 비건 레더 재킷으로 잘 선택하지 않는 브라운 색상이더라도 정상가 무려 38만 원대를 자랑하던 게 게릴라 타임 찬스와 각종 할인을 더해 12만 원대로 떨어지는 것을 모른 척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한때는 미니멀리스트에 열광하던 때가 있었으므로 이 습관을 들인 것이 꽤나 오랫동안 유효하게 남아있는 듯, 스멀스멀 '굳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이내 시뮬레이션 속 내 모습은 꽤 멋지고 요긴하게 뽕을 뽑을 자신이 있었다. 어느새 '이건 사야겠다'가 조금씩 이기고 있는 중이었다. 뇌는 최근 들어 가장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으며 손가락은 이미 최종 결제 단계 버튼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 그전에 더 저렴해서 눈속임 당해 사는 것이 아닌지 한번 더 체크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20대의 나는 가끔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유행하는 색을 바르면 쉽게 노숙해 보이는 탓에 내 베스트 컬러는 뭘까 궁금해졌을 무렵 퍼스널컬러 진단이라는 게 이제 막 유행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인기 있는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 체형에 어울리는 옷이나 헤어, 메이크업을 알려준다며 연예인들의 그것이 왜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는지 나노단위로 분석하는 것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블랙을 좋아했던 나는 그 색이 나와는 영 맞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진단해 주는 사람이 내 옷장에 주로 있는 색은 블랙이라는 말에 상당히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내게 어울리는 색과 안 어울리는 색을 알게 되면서 무언가를 구입할 때 참고하며 돈도 아낄 수 있었고 그게 지난 내 시행착오들의 배경을 뒷받침해주기는 했지만 때로는 그 유형에 맞는 것만 찾으려 드는 모습을 볼 때가 잦아졌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는 노력보다는 이미 확정된 결괏값 속에서 선택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져서였을까. 맞지 않는 것을 선택할 실패가 두려웠던 걸까.
그래서 아까 새로 구매했다는 재킷의 색상은 브라운이라 내 유형에 따르면 그다지 좋은 컬러는 아닐 수도 있겠다. 게다가 무거운 소재는 더더욱 피해야 한다느니 신비롭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최고라고 들었기에 강렬하고 멋진 이 가죽 재킷을 구매할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에서 났는지 모르겠다. 용기라기보다는 청개구리 심보라고 해야 맞겠다. 생각해보면 나는 꽤 다양한 옷을 시도하고 싶어한다. 까만 옷과 하얀 옷도, 큰 옷도, 붙는 옷도, 멋지고 강렬한 옷도, 포근하고 편안해보이는 옷도. 앞으로도 나이가 들면서 내가 좋아하는 색들과 스타일은 바뀌어갈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마음이 한 곳에 얽매이고 갇히지 않기 위해 도전해 나갔으면 좋겠다. 종종 어울리는 것이라는 기준에 고집하기보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 조금 더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에게 편하다 느껴지는 것은 곧 내게 어우러질 것이라 믿는다. 여러 방면에서 어울림과 취향의 교집합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