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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Oct 23. 2023

지독한 만성 피부염을 득템 하셨습니다

가장 예민할 시기에 피부가 미쳐버렸다

 10년이 지나도 생생한 날들이 있다. 내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라던가, 몹시 기뻤던 때라던가. 좋지 않은 기억력을 가졌어도 내 볼에 열꽃 같은 게 피어나던 시점은 뇌리에 박혀있다.




당시 학생 시절 흔히 겪는 여드름은 이미 이마에 심심치 않게 보유했고 블랙헤드를 짜기 바빴던 여고생이긴 했으나, 그렇게 짜지 지도 않는 붉게 올라온 건 19년 인생 처음이었다. 평소에 기초 화장품도 귀찮아서 그 겨울에도 스킨만 대애충, 엄마가 쓰던 미백 화장품도 관리한답시고 대애충 바르기도 했다. (까무잡잡해서 미백에 관심이 많았다)

이번엔 좀 성가셨다. 보기 싫게 볼 한가운데 났던 녀석은 여드름에 종종 바르던 독한 소주냄새가 나는 스킨을 부어봐도 도무지 잠잠해지지 않는 것이 약간 가렵기도 했다.


만능 연고였던 세레*톤지를 발라도 좋아지는 듯싶다가도 금방 도망가서 또 옆에 나버리곤 했다. 우리 집을 흉보이고 싶진 않으나, 우리 아빠의 강력한 무좀을 잠재워준 연고가 하나 있었는데 마침내 그 연고를 얼굴에 발라버리고 말았다. 스테로이드가 뭔지도 몰랐던 나는 작은 열꽃 하나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워버린 줄도 모른 채 그렇게 고통의 길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볼 전체가 가려워졌고 붉어졌으며 아프기도 한 것이 이제는 아무거나 써도 괜찮지가 않았다. 모든 화장품이 따가웠고 심지어 세수도 자극이 되었다. 학교에 가서도 얼굴을 긁다가 홍당무가 되었다. 괴로움에 도저히 견딜 수 없던 나는 호랑이 같은 담임 선생님에게 얼굴을 보여주러 교무실에 들렀다. 


"선생님, 저 얼굴이 너무 가려워요."

"너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야, 얼른 병원에 가봐" 


그는 놀란 눈을 하며 평소엔 하기 어려운 조퇴를 허락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동네 피부과에 방문했다.

병명은 전형적인 스테로이드 부작용.

의사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라며 내 얼굴에 돋보기를 갖다 댔다. 피부는 종잇장처럼 얇아진 상태고 리바운드 현상이 너무 심할 것이라며 아무것도 당분간 바르지 말라고 조언했다.


스테로이드를 의사처방 없이 마음대로 바른 죄였다. 

그렇게 공부하고 떡볶이 먹느라 바쁜 고3의 시간에 새로운 골칫거리가 추가됐다.


어느 날 반장이 내 손에 아트릭* 크림을 조심스럽게 쥐어주었다. 뱀처럼 탈각하느라 각질이 우수수 생겨난 내 얼굴이 꽤나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지나치지 않고 마음 써준 그녀의 선한 표정과 마음이 아직도 따뜻하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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