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고 가리려 할수록 피부는 좋아질 수 없다
스무 살이 되어 첫 번째 대학교에 입학했다.
무조건 잘 가리기 위한 커버 화장 기법 때문이었을까?
당시 아무도 나에게 피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본능적으로 단체생활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설레는 엠티나 워크숍 따위는 나의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하면 안 갈 수 있지?부터 고민해야 하는 '문제적 이벤트'일뿐.
화장을 벗겨낸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라면 그 이후로도 거의 프로 불참러를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
피부는 스테로이드를 이미 다 뱉어낸 지 오래였지만, 후유증으로 엄청난 사막화를 겪고 있었다.
때마침 당시 올리브*이라는 드럭스토어 매장과 아*따움 같은 화장품 매장들이 이제 막 유행을 달리던 시기였다. 특히 그 젊은 올리브에 들어가면 처음 보는 브랜드 섹션에서 백색 가운을 입고 상담을 해주시는 분들이 영업을 하곤 했는데, 나는 이곳에서 주로 말 그대로 피부 저격을 당하며 '너무 건조하시네요. 건조해서도 여드름이 생기는 것 아시죠?'라는 말과 함께 보습제를 종종 추천받아 구매했다.
대부분 가려워지고 성이 났지만 기대했던 건조함도 잡아주지 못했다.
참으로 무지한 시절이었다.
나한테는 아직까지 다른 중요한 문제들도 더 많이 있었다. 슈프림팀의 공연장에 가야 한다던가, 다니던 대학의 자퇴를 결정하는 일이라던가.
그 덕인지 내 피부가 아프다는 걸 길 가다 넘어져 아물지 않는 상처쯤으로 여긴 채 이따금씩 까먹고 지낼 때도 많았다.
각종 잡지와 매체에서 각질 제거 화장품들 또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마치 박피 치료라도 되는 듯 제품 하나로 새로이 재생되는 피부를 기대하는 새로운 희망도 불어오는 듯했다. 트러블의 유일한 '적'은 각질이 되고 마는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십 년 전 유투*가 이 정도로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도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는데,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SNS 후기 광고에 혼미해지기 쉬워진 세상이다)
나 역시 인터넷과 커뮤니티에서 피부가 좋아졌다는 글을 보면 스크랩하고 메모하는 일을 얼굴에 열이 오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백화점에 출석체크를 하며 모든 브랜드 매장의 화장품들도 섭렵하기 시작했다. 이 짓을 반복하며 회복과는 전혀 친해질 수 없는 반대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상했다.
온갖 노력을 할수록 좋아지기는커녕 더욱더 예민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성인이 되면 학생 때 피부 문제 따위는 다 낫는다는 오래된 bullshit(허튼소리라 부르기엔 너무 어감이 약하다)은 고사하고 내 상태는 여드름과 달랐지만 그걸 분간할 수 있는 이는 적었다. 그게 피부과 의사일지라도.
여기서 잠시 여러 헛다리 경험을 소개한다.
1. 내 피부는 망쳤지만 무좀 치료 효과는 성공적이라는 그 유명한 피부과를 방문해 보았더니 난생처음 보는 여드름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타는 듯한 작열감에 상태는 나빠졌고 곧바로 중단하였다.
2. 또 다른 공장형 피부과에서는 실장이 3초 만에 필요한 시술을 추천해 주었다.
금액 또한 어마어마했지만 서울이니까, 강남이니까, 치료가 효과적일 테니까 라는 생각뿐이었다.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피지선을 태우는 레이저였지만, 당장에 1회로는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며 5회 결제칸에 사인만을 기다리는 실장의 한시가 급한 제스처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방문 경험이다.
다행인 건 1회만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레이저가 많이 아플 거라고 했다...)
정말로 볼따구니에 화염방사기를 분사하는 것 같은 처절한 고통을 느꼈다. 눈물이 나고 신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휴대폰 액정으로 비추어 본 얼굴이 쓰라리고 빨갰다. 버스에 올라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 시선이 아팠다. 내가 보기에도 추한 몰골이라는 서러움에 집 가는 내내 눈물이 쏟아졌다. 동행했던 엄마 옆에서는 피부 때문에 울고 싶지 않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억울함과 속상함에, 그리고 왠지 모를 미안함에...
피부과는 믿을 수 없다며 방문한 피부관리숍에서는 이런 문제성 피부를 많이 봐왔고 무조건 본인의 방법으로 낫는다며 호언장담을 날렸다. 주로 고통스러운 압출 위주의 관리와 전신스톤마사지(?)까지 함께 곁들여줬지만 눈물 나는 압출을 마치고도 다음 날이면 도돌이표가 되곤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여드름이 아니었다.
3. 여러 검색과 의심 끝에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생리통도 매번 겪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컸다. 호르몬 문제일까 싶었던 나는 이번엔 피임약을 처방받았다. 몇 알을 먹었을 때였을까? 팔에 피가 통하지 않는 듯 심하게 저리기 시작했다. 혈전 부작용을 의심하며 이마저도 급히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내 몸은 그만 실험을 멈추라고 소리치고 있었을 거다.
회복을 위해 당장 해야 할 산수는 덧셈 아닌 뺄셈이었다.
이제는, 아니 이제야 여드름이 아니라는 사실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의사들이 내 피부를 3초 만에 여드름이라 진단했지만 우리가 경험한 사실들은 아니라고 여전히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