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싶었던 청년의 평범하지 않은 날들
가을바람과 함께 그녀가 떠났다는 소식의 충격이 문득 선명하다. 비슷한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다고 착각이라도 하는 듯 마음이 쓰이는 계절이 왔다. 우리가 함께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었다면, 아니 이다음 어딘가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면 꼭 한번 안아줄 수 있다면.
이번 생에 좋은 피부로 지내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피해의식에서 기반한 습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나 보다.
당시 '피부만 하얗고 깨끗해도 사람이 매력 있어 보인다' 따위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댓글들은 곧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의 "옳음"이었으며 나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릿속이 앞서 읽히는 듯했다. (본능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패션 쪽에 더 힘을 싣게 되기도 했다)
밝은 조명이 있는 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고, 집 안의 모든 형광등은 사절하며 전구색 조명인 무드등을 켜고 생활했다.
본가에 있을 때 화장실 조명이 두 개가 있었는데 아예 켜지 않거나 꼭 어두운 샤워실용 불을 켜고 들어가는 거울 속 내 모습을 외면했다. 거울도 스치듯 봐주어야 한다. 오늘 상태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면 조금 더 봐줄 순 있다.
아직까지 대표적으로 다있소 매장의 불빛이 제일 싫다. 그렇게까지 많은 형광등이 왜 필요한 걸까?
나와 공감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자외선차단제는 필수라는데 바르고 지우는 데 문제가 없는 제품을 찾기는 어려웠다. 앞머리를 낸다던가, 열을 내서 머리를 꼬불지게 하는 일도 조심하고, 염색이나 매니큐어도 자극적으로 느끼는 탓에 멀리하게 되었다. 심지어 새치가 20대 중후반부터 생기기 시작했는데도 잘라주기만 할 뿐 누가 뭐라고 해도 어찌하지 못하는 중이다.
치장까지는 못해도 외모에 미련이 많았던 나는 아쉬움을 내려놓기 위해 나름대로의 내적 씨름과 정신승리를 계속 연습했다. 세상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기에 때때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다. 지하상가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모르는 아주머니에게 피부지적을 받고 관리를 받아보겠냐는 질문을 받고, 오랜만에 보는 가까운 친척들에게는 걱정과 우려의 말들을 들어야 했다. 무리해서 매일매일 화장으로 커버를 하고 나가도 반복되는 상황들이 계속됐다.
문득 내 안에는 우울감이 조금씩 자라났다.
그 와중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가족에게까지 겉으로는 희망찬 말을 하면서도 억울함을 꾹꾹 눌렀다.
이대로 20대를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방문한 피부과.
의사 선생님은 내게 항생제를 먹어볼 것을 권했다.
결과는 마법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