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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Nov 06. 2023

현재가 영원할 거라는 착각을 버리다

항상 좋을 일도, 항상 나쁠 일도 아니로군요

    

    

    새롭게 받은 항생제 처방을 통해 아주 잠깐씩이라도 한 번이라도 이전 피부로 돌아가고 싶었던 소원을 이뤘다. 필요하면 약을 받고 1~2개월을 먹고 끊는 방식이었다. 광이 나는 피부를 유지하다가도 어느 시점에서는 무언가에 크게 자극을 받으면 다시 확 나빠졌다. 약을 먹을 때는 세상이 모두 아름다워 보이다가도 불현듯 내가 피부의 심기를 건드려서 재발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는 마음이 몹시 답답하였다. 여러 날들을 부작용을 감당하면서 먹은 약의 소용 또한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에 허무함도 컸다.


이 덕분에 인생은 솔티드캐러멜같이 달고 짜지고 달고 짜지는 것을 반복했으나, 필요할 때는 언제라도 그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안정감을 줄 때도 있었다.



완벽주의 성향은 자신의 모습에 흠이 사라지지 않자 자꾸만 스스로를 탓하기 일쑤였다.

정확한 재발 원인도 알지 못하고, 그렇게 약에 의존하다가 호시절은 다 지나갈 것 같아 두려웠다.

자극되는 행동들을 줄이기 위해 극히 제한적인 삶을 선택했으며, 인생에 안 되는 리스트만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끝나지 않는 싸움이 지겨워질 때쯤,

진정한 나 자체를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나고 나서 나도 내 피부가 원하는 게 뭔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현재의 짝꿍과 연애를 하던 당시 내가 봐도 화장을 한 내 모습이 훨씬 자신감 넘치고 생기 있는데도, 맨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봐주고 데이트를 할 때도 화장이 피부에 불편하고 아플 것 같다며 피부의 안위부터 제일 먼저 생각해 준 덕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피부 한 겹이 다가 아닌데, 나는 나를 그렇게만 판단하려 하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이 내 잣대가 되어 들이대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돌아보니 아무리 겉으로 쿨한 척해봐도 누군가가 의도치 않게 건드리면 폭발해 버리는 모래성 위에 지은 집 같은 상태였다. 비단 피부에 관한 것이 아니어도 어느 쪽이든 그랬다.


붉고 뜨거운 볼에 메이크업을 올리느라 생긴 건조함과 각질, 트는 피부가 더러워 보일까 걱정하며 신경 쓰던 외출 시간. 쌓인 화장을 지우면서 자극을 주던 행동들이 결코 지금 내 피부가 바라는 환경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 눈에 괜찮아 보이려고? 밖에서 마주치는 거울에 속상하지 않으려고?



내가 정녕 무엇을 위해서 이 행위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진짜 내 일상이 튼튼하고 좋아지기 위한 행동은 무엇일까?'




모든 포커싱이 피부에 있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쉽게 좌절되는 삶이었으나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고 싶었다.

가능한 것과 이미 가진 것들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다.




불행한 일과 행복한 일을 떠올려 본다.

마냥 피부 때문에 모든 것이 나빴는가?

내가 남들과 무조건 동일한 조건을 가져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지 않았나?




보이지 않던 깊은 열등감을, 조금씩 꺼내 만져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글과 영상을 만들면서 내 아픔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위로를 할 마음이 생겨났다. 내가 만든 콘텐츠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공감을 해주고 소통한다. 서로 위안이 되는 훈훈한 모습도 먼발치에서 흐뭇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아픔을 나누기로 했을 뿐인데, 본인의 삶을 공유해 주는 고마운 댓글들이 달릴 때면 원체 부족했던 인류애를 듬뿍 느낀다.



아, 이건 나여서 가능한 일이구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인간이 많이 하는 착각 중에 하나는 지금 상황이 계속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라던데, 나도 그랬는지도 모른다. 피부는 여전히 누구보다 민감하고 한 번씩 고통스럽지만, 그간 나도, 환경도 많이 변했다고 느낀다.

그 시간 속에서도 분명한 기쁨이, 웃음 짓고 위로받는 날들이,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는 일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또한 마실 수 있는 물과 공기에 감사하며...





누군가는 타인을 통해, 종교를 통해, 누군가는 본인 스스로 치유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또한 당신이 결국엔 일어선다고 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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