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인생의 정산 스토리, 그리고 또 제주도
2018년 시작부터 참 바쁩니다.
이런저런 일들이 뒤섞여 있기도 하고
어쩌다 걸린 A형 독감으로 컨디션도 그렇게 좋지는 못한 요즘입니다.
뭐부터 시작하고 끝내야 하는지 조차 가늠이 안 될 만큼 힘들지만
달려야 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에 달리고 있습니다.
제 서른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여유도 없었습니다.
마음 편히 있었던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어깨와 머릿속을 누르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들을
이겨내고, 버리고, 외면하기 바빴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른하나.
역시 서른의 그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여유는 없고 바쁘며 어깨와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과의 투쟁의 시간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알기에
짓눌러도 터지지 않게 저를 컨트롤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마음먹기.
마음먹기에 따라서 짓누름의 무게를 조금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년 안에 이룰 것, 3년 안에 이룰 것들에 대한 목표를 정해봤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단계를 잘게 쪼개어 생각하다 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버겁게 느껴지길래 단계는 없이 목표만 정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것, 흘려야 할 피가 아깝기는 하지만
딱 3년만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습니다.
3년 뒤면 34살.
35살부터는 무조건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합니다.
그렇게 서른하나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공간에 매료되었고, 공간에 치유되었다.>
제주도의 세 번째 날.
호사스러운 맛있는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 (정확히는 구제주)는 새로운 것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호텔이 생기고 올리브영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큰 베이커리 카페도 생겼습니다.
숙소 앞에 생긴 "앙뚜아네트" 라는 카페가 그 대표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다양한 베이커리에 매료되었고
오른쪽에 계단식 좌석과 크기만으로 탄성을 자아내는 앙뚜아네트 초상화까지.
모든 게 완벽한 베이커리 카페였습니다.
그 완벽한 카페에서 스콘과 라떼를 먹은 뒤
성산읍으로 떠났습니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숙소를 여러 개를 잡아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여행을 해보려 했습니다.
첫날 숙소만 예약을 하고 발길이 가는 데로 가다가
멈춘 그 주위에 숙소를 잡아보려 했습니다.
계획이 없었던 제주도 여행이었지만
가고 싶었던 숙소가 한 곳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제 페이스북 친구분들이 제주도를 가면 꼭 가는 숙소가 있었습니다.
작년 추석 연휴 때 가보려 했던 그 숙소였는데
안타깝게 가지 못했던 그 숙소.
성산읍의 플레이스 캠프 제주로 왔습니다.
도착하고 체크인을 할 때부터 좋은 느낌이 가득했습니다.
체크인은 2시부터 인데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짐을 맡겨 놓고 받은 커피 쿠폰을 가지고
플레이스 캠프 제주 안에 있는 도렐카페에서
서른 살 정산서의 프롤로그를 끄적거렸었었습니다.
도렐의 시그니처 커피는
너티클라우드 라는 커피입니다.
너티클라우드는
맨 위에는 에스프레소,
그 아래는 땅콩크림,
맨 아래에는 차가운 우유가 멋진 유리컵 층층이 포개져 있는
정말 맛있는 커피였습니다.
너티클라우드와 함께 카페에서 이것저것 끄적끄적 거리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카페에서 글을 쓰는 그 여유를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참 날씨가 좋은 하루였습니다.
글을 쓰다가 햇빛 쨍쨍한 밖을 바라보다를 반복하면서
그 여유를 누리고 즐겼습니다.
플레이스 캠프 제주는
성산일출봉을 정말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했습니다.
성산일출봉의 모든 것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2시가 되었고,
체크인을 했습니다.
조금 놀랐던 건
좁지만 아늑했고
모든 것이 아기자기했습니다.
이불도 푹신푹신하고
침대 옆 세면대도 좋았고
어메니티도 좋았습니다.
푹신한 이불에 누워 잠깐 쉬다가
섭지코지로 가기 위해 나왔습니다.
섭지코지를 가는 이유는
안도다다오가 디자인 한 유민미술관을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주도 떠나기 전 봤던 알쓸신잡에 제주도 편에 나오기도 했었고
안도다다오의 디자인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참 날씨가 좋았습니다.
플레이스에서 섭지코지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그 길 도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바람이 참 많이 불었지만
파란 하늘과 적당한 구름이 너무 멋있었던 섭지코지.
천천히 걸으며 바람을 느끼고 하늘을 느끼기 정말 좋은 날이었습니다.
간만에 떠난 여행에 철칙 중 하나는
하고 싶은 건 고민하지 말고 하자 였습니다.
섭지코지에는 정말 멋진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민트레스토랑.
성산일출봉을 고스란히 바라보면서 맛있는 식사를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예약을 안 하고 가는 터라 기다리거나 못 먹지는 않을까 했는데
시간이 점심시간을 약간 지난 후여서 바로 앉을 수 있었습니다.
성산일출봉을 볼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멋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서
파스타를 주문했습니다.
2만 원 정도 하는 파스타.
돈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호사를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파스타 한 올 한 올 느끼면서,
새우살 한결 한결 느끼면서,
맛있게 파스타를 느리게 먹으면서
간만에 느끼는 호사스러움을 느끼며 맛있게 한 끼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유민미술관.
유민미술관은 안도다다오가 디자인 한 미술관이고
전시되는 물품은 유리공예 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유민미술관은 건물 자체도 좋지만
건물과 함께 바라보는 주변과 하늘이 너무 멋졌던 공간이었습니다.
전시장 안은 다양한 유리공예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작품은 제 스타일이 아니긴 했습니다.
안도다다오를 보고 갔던 미술관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섭지코지에서 다시 플레이스로 돌아왔습니다.
섭지코지에서 쎈 바람을 맞으며 다녔는지
침대에 잠깐 눕는다는 게 잠이 들었습니다.
일어나니 밤이었습니다.
무얼 먹을까 하다가 근처 밥집에서 대충 한 끼를 먹고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 가지고 왔습니다.
밤의 플레이스 캠프 제주는
낮에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저녁은 일부러 대충 때웠습니다.
플레이스 캠프 제주 안에는
도렐 카페와 함께
피자, 분식, 펍, 우육면과 딤섬, 베이커리까지 다양한 맛집이 있습니다.
막걸리와 가장 어울리는 것이 어떤 것일 까 찾다가
피자를 먹기로 했습니다.
피자집 이름은 "모꼬지"입니다.
따끈따끈 갓 나온 매콤한 피자 한판과
제주도 막걸리와 안주를 세팅했습니다.
플레이스 캠프 제주에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고요한 방 안에서
분위기 좀 낼 수 있는 노래를 틀어놓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막걸리와 피자는 처음 먹어보는데
나름 궁합이 괜찮았습니다.
노래 때문인지
공간 때문인지
안주 때문인지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우고 헤롱헤롱 한 상태에서
침대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깼다가 들린 노래가
정말 감미로웠습니다.
그렇게 노래를 들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알게 된 것은
공간이 나를 매료시킬 수 있고
공간이 나를 치유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매번 제주도를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탑동방파제의 그 길이였는데
이유가 하나 더 늘게 되었습니다.
바로 제주도 플레이스 캠프 제주.
다시 제주도를 가게 된다면
당연히 와야 하는 곳이 한 군데 더 생겼습니다.
기쁩니다.
사랑하는 제주도에서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