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 이경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합계출산율이 0.70을 달성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저의 수치이자 OECD 평균 국가 꼴등의 기록이다. 청년 세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대해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는 아이의 육아에 따르는 노동과 경제적 부담이다.
육아는 언제부터 우리에게 노동으로 받아들여졌을까. 혹자는 육아노동이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육아를 “신성시하게” 바라보는 전통적 가치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육아란 말 그대로 부모가 아이를 기르는 일을 말한다. 표현할 수 없는 긴밀한 유대감으로 연결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단지 목표를 위해 일하는 “노동”이라는 단어를 함께 쓰니 많은 이들이 불같이 화를 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확한 시간에 맞춰 수유하고, 하루에 열댓 개의 기저귀를 갈아가며, 원인 모를 울음을 달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러한 행위를 노동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긴장된 일상을 매일 마주하는 양육자에겐 깨어있는 모든 순간이 노동의 시간이며, 심지어 편히 자지도 못하니 자는 순간에도 편히 쉴 수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육아를 대신하는 로봇이 생긴 미래에는 과연 육아를 노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다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보편적인 내 엉덩이> 등 제목부터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이 소설집은 SF소설 작가 이경의 신작이다. 2022년 문윤성SF문학상 중단편 부문에서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을 쓰기 시작한 이경 작가는 파격적인 내용과 유쾌한 문체 덕에 ‘육아노동’과 ‘존엄사’ 등 이 책에서 등장하는 다소 무거운 주제도 흥미롭게 풀어냈다.
아기는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살 수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죠. p.30
아이를 낳은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초반부터 이어진 두 작품에는 육아를 주제로 한 소설이 연달아 등장했다. 일본의 라이트노벨 제목 같기도 한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이하 알렉산더)는 말 그대로 어느 날 밤 거실에 알렉산더의 형체를 띈 수유로봇이 나타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알렉산더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사용자의 스마트폰에 기록된 수유 일지 데이터를 학습하여 일정한 시간에 나타나 살균 소독을 자동으로 수행하고, 진행 상황을 보고하며 소독기 안에 남은 젖병 개수를 알려주는 것뿐이다. 젖병 회사는 왜 이렇게 간단한 일에 AI 기술을 투자했을까? 작중 CEO의 말에 따르면 아이를 양육하며 느끼는 양육자의 가장 큰 감정은 ‘고립감’이라고 한다.
“…아직도 회의 때, 마케팅팀의 한 분이 하신 말씀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키워보니까 아기가 주는 기쁨과 고통은 상쇄되지 않더라는 말이요.” p.33
아이는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잠시라도 눈을 땐 순간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 때문에 양육자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아이와 양육자 사이의 긴밀한 연결임과 동시에 세상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둘만의 고립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주식회사 베이비케어의 4세대 ‘보틀스’에서는 수유를 도와주며 가벼운 스몰토크를 진행하는 로봇을 개발했다. 이는 실제로 양육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그저 양육에 벗어난 짧은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주인공 미주는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낀다.
로봇의 존재를 껄끄러워하고, 말수가 적은 그의 남편 역시 육아에 집중하느라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관심사인 ‘축구’에 대해 알렉산더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자, 그와의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양육에서의 해방이 아닌 그동안 하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의 대화만으로도 양육자는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보호자들은 아기의 울음에 감정과 마음을 소모하기 때문에 힘들어하시죠. 우리는 그렇지 않아서 우는 아기가 힘들지 않아요.” p.100
양육으로 인한 자유의 상실 역시 육아노동을 심화시키는 사유 중 하나다. 특히, 고정적인 양육자가 존재하지 않는 맞벌이 부부일 경우 더 큰 정신적 스트레스로 다가오곤 한다. 두 번째 소설인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역시 양육자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SF와 결합해 그려낸 소설이다.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전국 어린이집에 긴급 휴원 명령이 내려진 어느 날,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혜인”은 곤란한 상황에 부닥친다. 해외에 출장간 남편으로 인해 자신을 대체할 양육자를 찾지 못한 혜인은 100일 된 아이의 돌봄과 회사의 중요한 회의를 동시에 처리해야만 했다.
친구의 적극적인 추천에도 불구하고 로봇에게 자신의 아이를 맡긴다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 혜인이었지만, 육아휴직으로 복직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휴가를 쓸 수 없었던 혜인은 결국 로봇이 대신 양육을 해주는 ‘황새영아송영’이라는 교통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양육 서비스 ‘황새영아송영’에는 신생아와 양육자를 위한 최고의 서비스가 존재했다. 육체노동으로 인해 온몸의 근육이 딱딱해진 어머니를 위한 최고급 안마의자 서비스와 온종일 신경을 뗄 수 없었던 아이와 잠시동안 분리되어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되는 요람 서비스 등이 갖춰진 ‘황새’에 탑승한 혜인은 실로 오랜만에 육아로부터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요람이 100일 된 신생아 “이안”을 위한 쉼터였다면 황새는 100일 된 엄마를 위한 “혜인”의 쉼터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감정을 교류할 수 없는 로봇과 아이가 함께 자란다면 좋은 영향을 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부모의 진심 어린 사랑과 희생만이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아이를 위한 시각에서 육아를 바라본 것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의 입장에선 육아는 사랑과 동시에 고된 노동이다.
“...저는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낳지 말걸... 애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생고생이야, 없어졌으면 좋겠다, 과거로 돌아가면 절대 안 낳아...” p.103
작중 혜인이 한 이 말이 금기로 들리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도 육아를 노동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혜인을 포함한 모든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단지, 육아가 힘들다는 걸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을 뿐이다.
육아의 행복과 고통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육아를 신성하게 바라보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길들어 힘든 걸 힘들다고 하지도 못하고 있다. 왜 희생과 인내는 미덕이 되었는가. 언제까지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야 하는가.
앞선 두 소설 외에도 이 책에 실려있는 다른 소설들에는 이미 현재 인간이 수행하고 있는 많은 노동을 로봇이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육아는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감정이라는 걸 갖고 있지 않은, 로봇은 이해할 수조차 없는 ‘부모’의 양육만이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일까. 그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그 의미를 지켜내기 위해 이 세상의 부모는 계속해서 희생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제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구시대적인 가치관과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을 없애나가기 위한 첫걸음은 두려움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