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러니까, 우리 갈라파고스 세대> - 이목돌
베이비붐 세대, X세대, MZ세대, 알파세대 등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세대들이 존재한다. 각 세대들은 저마다의 특성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거나, 집단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최근에는 ‘세대’라는 단어가 편을 가르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고, 이로 인해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은 ‘세대 간 갈등’이 시작되었다. 갈등을 통해 세대는 더욱더 세분화되고, 복잡해졌는데, 이는 같은 청년세대라도 자신의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갈라파고스 세대>의 저자 이묵돌은 임홍택의 저서 <90년생이 온다>를 읽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책 <90년생이 온다>가 현재 사회의 첫 진출을 앞둔 청년세대의 특징을 잘 설명했지만, 실제 90년대생이 아닌 80년대생이 청년들의 특징을 파악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저자는 90년대에 태어난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지금의 청년세대를 ‘갈라파고스 세대’라고 칭하며, 새로운 세대의 개념을 이 책에서 제시한다.
갈라파고스 세대라는 제목은 ‘모두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면, 다르다는 것 자체가 그 세대를 정의하는 특징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발상에서 나왔다. 정의할 수 없다면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곧 공식이 되는 것처럼. (프롤로그)
갈라파고스는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위치한 에콰도르의 제도로 각기 다른 1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준 섬으로 우리에게 익숙한데, 같은 구역 안에 있는 동일한 종의 생물임에도 각기 다른 외형을 갖고 있다는 점이 바로 진화론의 근거였다. 이처럼 갈라파고스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세대는 같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개인마다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는 독특한 세대로 불린다.
저자는 갈라파고스 세대가 다른 세대와 달리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세대라고 말한다. 이들은 독립적이지만 연대에 열광하며, 탈권위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만, 순응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자유를 추구하지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경쟁이 자신을 파괴하는 것을 알면서도 경쟁하는 것 외에는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이중적인 세대다. 기성세대뿐 아니라 청년세대 역시 자신들이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는 형국이다.
현재의 청년세대가 이렇게 복잡한 특징을 갖게 된 이유를 저자는 대한민국의 과도한 경쟁사회 때문이라고 말한다. 갈라파고스 세대는 엄마의 배속에서 나올 때부터 남들과 무한한 경쟁을 해야 하는 운명이다. 남들이 다니는 학원은 빠져서는 안 되고, 책상 옆에 앉아 있는 친구도 그저 경쟁자 중 한 명일 뿐이다. 학교를 졸업해도, 회사에 들어가도, 아이를 낳아도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리셋버튼을 눌러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끝없는 경쟁을 반복하며 누군가의 머리를 짓밟는다. 짓밟지 않으면 짓밟힐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죽어라 달려야 겨우 평범해질 수 있는 현실도, 더 멀리까지 달리기는커녕 벌써부터 주저앉아버리고픈 나 자신도 전부 싫었다. 속 편히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했다. p.67
이러한 경쟁 속에서 너무나도 상처받은 청년들은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패배자가 될 바에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졸업 이후에도 취업하지 않은 ‘청년 백수’의 수가 126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최종합교 졸업자의 수가 452만여 명인 것을 참고해 보았을 때 대략 4명 중에 1명은 직장에 다니지 않는 백수인 것이다. 청년 백수의 특성상 집계되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청년 백수의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증가하는 청년 백수의 수보다 더 심각한 부분은 취업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이다. 통계청에서 청년 백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취업 준비나 자격증 공부를 하지 않고 ‘집에서 그냥 쉰다’고 대답한 인구가 64만 명이 넘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은 ‘잠재적 실업자’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끝없는 경쟁에 회의감을 느끼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슬퍼하거나 힘겨워하면 도태될 뿐이다. 아픔과 우울이 비정상적인 화학작용이며, 한시라도 빨리 떨쳐내고 지워내야 할 바이러스 같은 존재라면, 애초부터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쪽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p.144
누군가는 지금의 청년 세대를 ‘노력은 안 하는 주제에 흥청망청 놀기에나 바쁜 자식세대’(p.51)라고 말하곤 한다. 과거에 비해 삶의 질은 상상할 수도 없이 상승했으며,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편리하다고 해서 인생이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물질적 풍요와 보이는 외관만으로는 행복을 측정할 수 없다. 겉으로 봤을 때 갈라파고스 제도가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은 고독한 섬에 불과한 것처럼 우리 곁에 멀쩡해 보이는 청년도 사실은 자신이 만든 섬안에 갇혀 우리에게 구원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