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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Oct 17. 2023

정신 승리는 정말 이로울까?

[지하칼럼#5] - 정신 승리에 중독된 현대인

살다 보면 한 번쯤 정신 승리 라는 단어를 들어보았거나, 실제로 사용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신 승리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정신 승리는 실제 상황에서는 패배하였거나, 실패하였지만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패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을 말한다. 찌질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고백한다. 나 역시도 정신 승리 중독자다.


정신 승리의 대표적인 예시는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이다. 겉보기에도 잘 익은 포도지만 여우는 자신의 발에 닿지 않는 포도를 바라보며 '분명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리곤 오히려 포도를 먹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홱 하고 뒤돌아 버린다. 전형적인 찌질이의 모습이다.


이러한 정신 승리의 예시는 현실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시간을 놓쳐 자신이 보지 못한 야구 경기는 싱겁게 끝났을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불같이 화내는 우리 팀 부장님은 가정에서도 성격파탄자 취급을 받을 게 분명해 와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정신 승리는 대부분 현실과 반대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행복한 망상을 즐기다 번뜩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내가 보지 못했던 야구 경기는 이겨있고, 부장님 역시 다정한 모습의 가장이 되어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공평한 것 같고, 억울하다.


청년들은 실패가 두렵다.


딱 봐도 찌질해 보이는 이 정신 승리법은 사실 청년들에게 익숙하다. 오히려 청년들은 정신 승리를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회사에 출근하기 전 나는 돈 주는 피시방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친구가 없을 때 세상이 아닌 내가 세상을 왕따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말이다.


청년들이 방어기제로 정신 승리를 택한 이유는 실패가 두렵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살점마저 깎아내야 하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게 실패자로 남는 것보다 더 좋은 선택지로 보인다. 최근 미취업 청년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이나 전문직 등 고수익 직업이 아니라면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점차 의욕을 잃는다. 바늘구멍을 통과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할 바엔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이러한 정신 승리를 적절히 사용하면 분명히 스스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지만, 정신 승리가 가져다 주는 일시적인 편안함에 길들여지면 오히려 더 큰 자책감에 빠질 수 있다. 정신 승리는 말 그대로 정신적으로 승리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눈과 귀를 닫은 채 외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실적 자극을 차단하며 망상을 통해 승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눈과 귀을 닫은 채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있는 동안 현실은 멈춰있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혼자 멈춰있단 사실에 조급해진 우리에게 서서히 불안의 파도가 밀려온다. 뒤처지면 어쩌지, 다시 저 지옥 같은 현실로 돌아가란 말야? 내가 눈을 감고 있던 동안 세상은 얼마나 변한 거지? 결국 자책감을 피하고자 선택한 정신 승리는 더 큰 자책감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니체가 말하는 정신 승리의 위험성


독일의 철학가 니체는 원한과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를 이르는 말인 ‘르상티망’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며 정신 승리의 개념을 더욱 깊이 설명한다. 니체는 르상티망에 깊이 빠진 상태를 시기심이 가득한 상태라고 표현한다.


르상티망에 깊이 잠식된 사람들은 정신 승리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현실의 부자들은 다 돈을 허투루 쓸 거야.’ ‘장사가 잘되면 결국 음식을 대충 만들게 될걸?’ 등 이들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대상에 대한 열등감에 빠져 현실을 왜곡한다. 자신이 올라가는 것 보다 타인을 깎아내리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도도 하지 않은 채, 혹은 아무것도 이뤄보지 못한 채 ‘나는 저런 사람들과 달라’라고 생각하며 쿨한 사람인 척 행동한다.


니체는 이렇게 르상티망에 깊이 사로잡힌 사람들이 스스로 가치판단을 뒤바꾸는 행위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타인의 성공을 무시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 이들은 성공한 사람들은 절대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고, 했더라도 편법을 썼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결국 이들의 머릿속엔 편견의 뿌리가 점차 굵어지게 되고, 성공한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스스로가 변형시킨 가치에 갇힌 채 고립되는 것이다.


정신 승리는 일시적으로 병을 치료해 주는 의료용 마약과 같다고 생각한다.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루게릭병의 일시적 치료제로 대마가 쓰이는 것과 같이 우리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정신 승리'라는 마약을 사용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안정은 분명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하지만 약효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방금까지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던 몸이 대마로 인해 움직였건만, 약효가 끝나자 다시금 찾아온 현실의 고통에 환자는 괴로워한다. 그렇다고 의료용 마약을 계속해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료용이기는 해도 마약은 마약. 중독될 경우 일상이 더욱 빠르게 망가질 것이다.


정신 승리에 잠식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조절하여 사용하는 것. 말이야 쉽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자신만의 삶을 살아라.’ ‘나의 행복을 추구해라’라는 어른들의 말을 지키기도 어려운데, 정신 승리도 알아서 조절하라니. 착한 청년이 되기 위해 노력할수록 청년들의 어깨는 무거워져만 간다.


오늘의 물음표로부터 - 정신 승리와 현실 승리를 동시에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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