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칼럼#4] - 결혼과 육아를 포기한 청년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합계출산율이 0.7을 달성했다고 한다. 2015년 1.24의 출산율을 보인 후 계속해서 출산율은 감소했고 현재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까지 하락한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미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꽤나 심각한 수치다.
혹자는 청년들의 삶의 질이 올라갔기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의문이다. 2021년 기준 OECD 평균 출산율은 1.58이었고, 대한민국은 0.81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보다 더욱 심각해 보이는 문제는 우리나라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이탈리아의 출산율이 1.25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압도적 꼴찌다.
왜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아이를 낳지 않을까? 유독 대한민국만 출산율이 현저히 낮은 이유가 무엇일까? 모든 청년을 대표할 순 없지만, 2030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청년의 시각으로 그 이유를 한 번 알아보려 한다.
내가 갓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친구들은 결혼을 꿈꿨다.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친구도 있었고,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많았다. 졸업과 취업, 그리고 결혼은 대한민국의 당연한 코스였다. 과거에는 결혼을 안 한다고 말하면 이유를 캐묻거나 독특한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다. 결혼을 한다고 하면 오히려 바보소리를 듣는 시대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의문을 품지 않는다. 되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사람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오랜 세월 동안 굳혀왔던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대다수의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가 청년들이 젊음과 청춘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건 절반만 맞는 소리다. 확실히 현세대의 청년들은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보단,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만큼 현재를 즐기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현세대의 청년들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불안감을 쉽게 지우지 못한다.
이러한 불안감의 가장 큰 원인은 대한민국의 사회적 특성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극심한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 무슨 일이든 우리는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해야 하고, 평균 이상이 되어야 칭찬을 받는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가 된 아이들에게 쉼이란 없다. 내가 멈춘 순간 다른 이가 나의 머리를 밟고 올라간다. 그리고, 이 경쟁은 결혼과 육아의 허들을 넘어도 끝나지 않는다.
한 가정을 이루는데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집’이 대한민국에선 ‘재화’로 불린다. 공중파 방송에서 출연자의 아파트가 매매인지, 전세인지 물어보는 게 아무렇지 않은 사회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회사에 들어갔지만, 다시 ‘집’이라는 목표를 위해 출발선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쉬지 않고 달려도 이 경쟁엔 끝이 없다는 걸 청년들은 이제 깨달았고, 결국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코스에서 이탈한다.
이렇게 좌절스러운 현실을 경험한 청년세대들은 자신이 겪은 암울한 현실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한 청년들은 최대한 부족함 없이 아이를 키우려고 한다. 평균 초혼연령이 점차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부족하게 시작할 거면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겠다.’ 아이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출산의 거부감을 증폭시켰다.
혐오와 갈등 같은 사회적 문제도 출산율 문제에 빠질 수 없다. 세대와의 갈등, 성별 간의 갈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 간의 갈등 등으로 인해 서로를 물어뜯기 바쁜 시대다. 갈등과 혐오가 가득한 세상에서 청년들은 타인과 어울릴 이유를 찾지 못한다. 과거에 존재했던 단체 문화는 이제 사라진 지 오래다. 청년들은 회사나 나라에 기대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자신뿐이라고 믿으며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결혼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넘치는데, 결혼을 해야 할 이유는 전무하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면 상상 그 이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하지만, 청년들은 그러한 행복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청년들도 잘 알고 있다. 출산율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결국 화살은 나를 향해 날아올 것이라는 걸.
더 이상 누군가를 탓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남을 탓하는 순간 갈등과 혐오의 불길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문제가 더욱 끔찍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와 출산을 꺼리는 근본적인 원인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청년들은 다음 세대에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사회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 국가의 재난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