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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Jan 18. 2023

나는 추울수록 허물을 벗는다. (1)

[철학] <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 서평 - 장석주

학업을 중단하고 나는 니체를 만났다.


1년 남은 대학교에 휴학신청을 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서점에서 철학서를 고른 일이다.


세상에 회의감을 느끼고 나아가야 할 길을 잃었으며 답답한 커리큘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현재의 조언가들은 나에게 행복의 가치는 숫자와 돈이라고 하였고, 더 행복하기 위해선 더 높은 학점과 자격증, 경력을 쌓아야 한다고 하였다. 나의 꿈을 묻기 전에 나의 전공과 토익점수를 먼저 물었으며 꿈이라는 단어를 직업의 틀에 한정했다. 나는 아직 갖고 싶은 직업(누군가에게 이것은 곧 꿈이다)이 없었기 때문에 입술을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고, 내년이면 졸업하는데 아직도 진로를 결정하지 않았느냐고 꾸중을 들었다.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세상의 꿈이 모두 당신네들과 같이 돈을 벌고 직장에 취업하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 역시 그럴 만큼 내 꿈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누군가의 조언에 반박할 만큼 나의 마음이 단단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곧장 서점의 철학코너로 달려갔다. 아직 마음이 여물지 못했으면 그것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더욱 단단한 마음으로 확실하게 꿈을 키우기로 했다.




철학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아는 게 없었지만 "니체"라는 사람은 모를 수 없었다. "신은 죽었다"는 파격적인 문장으로 수천의 과거를 깨부순 사람. 다이너마이트, 망치 등의 과격한 수식어와 함께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한 사람이라고 건너 들었다. 철학은 취미가 아닌 공부의 영역이라는 핑계를 대며 그동안 뒷걸음질 쳤지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독하고 이해하는 것이 상반기 목표였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그와 친해져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니체를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인 "장석주"의 <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를 먼저 읽어 니체와 친해지기로 했다.



서문 : 등 푸른 고등어 같던 스무 살 때

제 1부 : 에케 호모 : 이사람을 보라!

제 2부 : 그대는 들개로 울부짖으며 살겠는가?
            모든 것은 가고 되돌아온다.
            그대는 왜 짐깨나 지는 짐승이 되었나?
            우리는 줄타기 광대다
            삶이라는 주사위 놀이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환자이자 의사였던 철학자
            니체는 왜 불교도가 아닌가?

제 3부 : 철학자에게 행복을 묻다
            인생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남녘의 바다에서
            궁극의 물음
            차라투스트라는 왜 고향을 떠났을까?
            사는 게 왜 이래?
            야생 늑대로 살아라
            철학자는 왜 독수리를 반겼을까?
            비둘기 떼와 웃는 사자
            국가는 어느 경우에 우상이 되는가?
            세상이 당신과 함께 웃을 때

제 4부 : 철학자는 왜 산책을 좋아할까?
            우리는 두려움의 탐색자
            사랑은 비처럼 내린다
            허물을 벗지 못하면 뱀은 죽는다
            조용한 말이 폭풍을 일으킨다
            철학자가 나무에서 배우는 것들
            당신의 이기주의가 오류임을 인식하라
            인생이란 대단한 게 아니다
            춤추고 웃어라!
            무덤이 있는 곳에만 부활이 있다
            정오는 왜 위대한가?

생애 : 니체의 생애
        
          

책의 목차가 조금 많다. 니체의 지혜를 한 책에 다 담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겠다.



책의 서문에서는 작가가 철학에, 그것도 니체의 철학에 빠지게 된 이유를 자신의 20대 기억을 통해 우리에게 알린다. 니체에 대한 책은 서점에 많았지만 이 책의 서문을 읽고 작가가 니체에 굉장히 열광하고 또 자세히 탐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이 책을 구입했다. 한 가지에 깊숙이 빠지고 그것에 미치도록 파고든 사람은 무섭고, 경이로웠으며,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자신을 잃고 몰락할 용기


니체 철학의 핵심이자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을 받은 대목이다. 책에서 말하는 자신을 잃고 몰락할 용기란 "사유 재산" "지위" "학벌" "명예"따위의 상징 자본들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한다. 목표를 찾아 방황하는 나의 뼈를 때리는 문장이자 막막한 1년을 버텨나갈 동아줄이었다. 21세기, 아니 이미 지난 수세기동안 제 1의 가치가 되어버린 상징 자본들. 이것들의 달콤한 유혹을 버티고 끊어낼 용기를 가지라고 니체는 말한다.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나의 머리에는 "행복=돈"이라는 수식이 자리 잡았는데 그 뿌리가 상당히 깊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니체가 말하는 "자신을 잃고"란 사회에서 인정받고 소위 "성공한 삶"이라고 불리는 상징 자본들을 스스로 버리라는 말이고 "몰락할 용기"는 그것들을 버렸음에도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더라도 눈치보지 말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찾으라는 일. 졸업을 앞두고 꿈을 찾기 위해 휴학을 다짐한 나에게 너무나도 힘이 되는 문장이었다.



자기 자신이 된 다는 것. 온전한 자기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 그걸 위해서는 세상과 투쟁해야 한다. ... "너 자신이 되어라 !"
- p.134 -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스스로 삶을 개척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정해진 커리큘럼, 안전한 사회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굉장히 큰 위험과 불안이 따르기 때문이다. 때마다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 정해진 시간에 주어지는 식사, 기다리면 퇴근하는 직장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찾아 회사를 떠날 수 있을까? 순차적으로 흐르는 12년간의 교육과정을 탈피하고 자신의 원하는 인생의 커리큘럼을 스스로 짜는 게 과연 순탄하기만 할까? 안전한 울타리 속에서 자란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할 수도 있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떨쳐내야 하며,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길을 개척해야 한다. 바로 "자신을 잃고 몰락할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니체는 "무지몽매는 행복이 아니다."라고 하며 "태평과 배부름" 역시 행복이 아니라고 했다. 삶에 안주하는 것은 생각을 멈추는 것이고 안정감 속에서 흐르는 것은 행복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쉽다는 것이다. 니체는 사회의 울타리에서 만족하는 사람들을 "들개" "낙타" 혹은 "노예"라고 부르며 이를 강하게 비판한다. 주인에게서 벗어난 들개는 안전을 위해 또다시 무리를 형성하며, 낙타는 제 삶의 목표 없이 인생을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항상 앞으로 걷기만 한다. 노예 역시 주인(여기선 사회 혹은 국가를 의미하겠다)에 굴복한 채 굽신거리기 바쁘니 말이다.


이미지 출처: 구글 웹 검색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스스로에게 거짓말 하지 말고 항상 성실해야 한다. ... 자신조차 모르면서 상대를 알기란 불가능하다.
- 니체, <아침놀> -
                                                                                      

"주체적인 삶을 살아라." "자신이 누군지 깨달아라." "너 자신이 되어라."


위 문장에는 정답이 없고,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얼핏 보면 뜬구름 잡는 소리로 보이기도 한다. 또 무수한 자기계발서에서 모두가 강조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자신의 신념대로 세상과 저항했고 그 결과물을 세상에 공개했으며 다수의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자신의 철학을 증명하고 입증한 것이다. 즉, 니체의 실체 없이 보이는 저 말들은 본받을 점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은 짧지만 강력한 힘을 발산한다. 인간의 존재 이유와 삶의 방향. 수십억의 인구 속 단 한 명의 인간인  "나 자신" 은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라면 그 끝 역시 "나 자신은 정확히 OO이다."일 것이다.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자신을 찾아내는 것. 결론에 도출하더라도 그 과정을 곱씹으면서 "나"에 대한 의구심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최종 목표이자, 깨달음의 경지일 것이다.




나는 니체의 "자신을 잃고 몰락할 용기"라는 말에 니체를 긍정하기로 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서 도망쳤고, 주어진 세상과 저항하기로 마음먹었으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나의 삶을 뒤흔들만한 조력자가 필요했고, 니체의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그의 사상에서 한줄기 빛을 보았다. 니체는 신을 부정하며 세상과 투쟁했다. 모두가 "네."라고 말하며 낙타로 남았지만 니체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자가 되었다. 수많은 비난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자신을 잃고 몰락할 용기"를 잃지 않았다.



맹한 눈과 굽은 허리로 목적 없이 걷던 내가 낙타에서 벗어나 날카롭고 호기롭게 "아니오!"라고 포효할 사자가 되기까지. 나는 니체를 마음속에서 밀어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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