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공중정원』- 가쿠타 미쓰요 (작품,2005)
어제 잠에 들기 전 한 웹툰을 봤다. 단편의 미스터리 호러물을 묶은 <궤짝>이라는 웹툰이었는데, 한 작품에서 안면근육에 문제가 생긴 주인공이 나왔다. 편의상 이성 신경과 감성 신경이라 칭한 그 신경들 중 주인공의 이성 신경은 태어났을 때부터 마비된 상태였고, 주인공은 자신을 연기하지 못한 채 표정에 모든 감정을 드러냈다. 표정관리를 전혀 못하게 된 주인공은 군대에서 분노의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반대로 회사에선 분노의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면접에선 긴장한 탓에 미간을 찌푸리고, 평소 싫어하던 직장 상사가 사고를 당하자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날 나는 잔인하리만큼 사실적으로 표현된 주인공의 표정 덕분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솔직한 표정은 그 어떤 가면보다 무서웠다.
솔직하게 살자. 아마 수 많은 가정의 가훈 중 하나일 것이다. 가족끼리는 거짓말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서로를 믿자. 참 멋진 가훈이다. 하지만 그만큼 지키기 무서운 가훈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몰래 비상금을 숨긴 곳을 솔직하게 말해야 하고, 어머니는 생활비 중 일부로 원피스를 산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자식은 부모님이 곤히 주무시는 새벽에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간 것을 말해야 하며, 그 돈으로 술과 담배를 샀다고 당당히 외쳐야 한다. 가훈에 따라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가정이 존재할까싶지만 가쿠타 미쓰요의 장편 소설 <공중정원>에선 이 가훈이 현실이 된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를 가훈으로 삼은 이 가정엔 비밀이 없다. 아, ‘드러난’ 비밀이 없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아빠는 아들의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르고, 엄마는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계획적으로 이 가정을 만들었으며, 남자 친구가 있는 딸은 이름도 모르는 사내와 러브호텔에 가고,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아들은 동정이 아니었다. 이들은 모두 서로를 속이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듯 행동한다. 그리고 안심한다. '우리 가족은 아무것도 숨기고 있지 않으니 서로를 굳게 믿겠지. 나의 비밀은 절대 들키지 않을 거야'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는 가훈은 어쩌면 엄청나게 큰 은신처가 되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우리 가족의 하루는, 아니 우리의 존재 그 자체는 가족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만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비밀 금지령 같은 것을 내세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훈이 있는 한 우리는 다른 식구들을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P.45
서로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강박은 인간을 망친다. 우리 인간에겐 각자의 비밀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 비밀이라는 것은 의식적으로 숨기는 것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드러내기 싫은 비밀도 포함한다. 보여주기 싫은 나의 오른쪽 새끼발가락, 말끝을 흐리는 말투, 긴장할 때마다 왼쪽 천장을 쳐다보는 습관, 그리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나의 머릿속까지. 사춘기 시절 내가 방문을 꽁꽁 잠근 것도 비슷한 이유일테다. 그땐 그냥 나의 모든 것이 싫었고, 아무것도 보여주기 싫었지만,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내 방문을 어떻게든 따고 들어오셨다. 가족끼린 항상 문을 열어둬야 한다는 가훈과 함께 혹시라도 애가 혼자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방 안을 킁킁 탐색하시면서.
나 역시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들키면 가정이 뒤집어지는 비밀을 갖고 있다. 물론 죽을 때까지 우리 가족에겐 비밀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렇다. 애석하게도 가정의 평화는 ‘서로에 대한 솔직함’이 아닌 ‘절대 비밀을 들키지 않게 하는 것’에서 온다. 부모님이 놀라지 않게 ‘적당히 잘 살고 있다’ 말하고, 자식이 부담스럽지 않게 ‘우리 집은 괜찮으니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가족만큼 가까운 존재에게 지나친 솔직함은 지나친 걱정과 염려를 불러일으킨다. 걱정과 염려는 불안을 증폭시키고, 불편한 기류를 만든다. 그래서 가족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표면적인 평화라도 지속되길 바라며.
가족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마치 전철에 함께 탄 사람들 같은 관계. 내 쪽에는 선택할 권리가 없는 우연으로 함께 살게 되어,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짜증을 내고, 진절머리를 내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래도 일정한 기간 동안 그곳에 계속 있어야만 하는 관계. 따라서 믿는다거나 의심한 다거나 착하다거나 악하다거나, 그런 개인적인 성품은 전혀 관계가 없다. 이 차에 함께 있게 된 사람 전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P.219
왜 가족끼린 솔직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 왜 서로를 속이고 있으면서도 가족끼리는 비밀이 없는 것마냥 행복하게 굴어야 하는 걸까? 그건 분명 ‘사실’이라는 끔찍하고도 추악한 괴물을 마주하기 싫어서일테다. 거짓으로 가득 찬 내부를 깔끔한 암막커튼으로 가려버리고 싶기 때문일테다.
다 그렇게 사는 것 같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모두가 서로를 속이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일파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추악함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우리 가족도 결국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도. 비밀이라는 벌레가 내부에서 우글우글거리고, 언젠간 드러날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외면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 비극적이지만 그게 가족의 운명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지금 식탁을 둘러싼 이곳에는 다섯 개 문이 있다. 튼튼한 자물쇠가 달린 똑같이 생긴 방문들. 다섯 개의 문 안쪽에는 각각 징그럽고 보기 싫고, 하지만 남들이 보면 치사하기 짝이 없는 비밀들이 왕창 우글거리고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번식하며 살아 있을 것이다. 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