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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May 07. 2024

저는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아, 소설 작가요『소설만세』

[에세이]『소설만세』- 정용준 (민음사,2022)

<소설 만세> - 정용준 (민음사)

소설 쓰는 사람 정용준의 에세이 <소설 만세>를 읽고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글을 쓰고 싶다. 그런 마음뿐이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써야 한다는 마음이 온몸을 지배한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일찍 찾아오지 않아 속상하고, 글을 쓰지 않고 있는 일상에 화가 나고, 글을 쓰지 못하는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하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 나에게는 그런 마음뿐이다.


좋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무슨 글을 써야 할까? 작년 3월, 잘 다니고 있던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집 근처 도서관 의자에 앉아 처음으로 내게 던진 물음이다. 근데 무슨 글을 쓰면 좋을까. 나는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걸까. 혹은, 무슨 글이 가장 폼날까…


처음엔 소설을 쓰기로 했다. 가장 많이 읽었기 때문에 익숙했고, 그래서 가장 잘 쓸 줄 알았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소설 쓰기는 4월 봄꽃이 피고 지는 마지막 그날까지 단 한 페이지도 완성되지 못했다. 한 문장도 채우지 못한 하얀 빈 페이지. 쓰고 지우고 쓰고 지웠지만 연필 자국조차 남지 않은 빈 페이지가 두 달 동안 내 노트북을 가득 채웠다.


낙서하고 스케치할 때는 행복하다. 망상과 몽상으로 마음은 부풀어 오른다. (...) 구체가 없는 막연한 큰 그림은 흐릿하게 뭉개진 예술 사진처럼 모호하고 예뻐 보인다. (...) 그러나 초고를 쓰기 시작하면 기쁨과 행복의 수위는서서히 줄어든다. 상상과 예상은 얼마나 터무니 없었던가. P.75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정말로 굴뚝을 차고 넘처 흐를 수도 있는데, 왜 나는 소설을 쓰지 못하는 걸까? 생각과 아이디어는 넘치고 매력적인 인물도 몇 만들었는데 도대체 왜 이야기는 탄생하지 않을까? 도서관 입구에 더 이상 분홍 꽃잎이 보이지 않았던 그날. 나는 소설 쓰기를 그만두었다. 소설을 써보진 않았지만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앎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머릿속에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고 개념도 없으니까 글이 써지지 않는 거야. 그때의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텅 빈 머리…보단 잡생각으로 엉망진창인 머리를 오롯이 글로 채우기 위해 책을 읽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소설과 시는 물론이고 평소 쳐다보지도 않았던 과학과 경제 서적도 읽었다. 머릿속에 들어오는 기분이 들지 않아도 기계처럼 눈을 굴렸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고 한 편의 서평을 썼다. 1년 동안 죽었다는 마음으로 생각을 비우고 생각을 채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지.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한 이유는 앎이 부족해서가 아닌데. 그냥 소설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내 소설이 없던 것뿐인데.


쓸 줄 몰라서 못 쓰나. 안 써서 못 쓰지. 방법이 없어서 못 하나. 안 해서 안 하는 거지. 잘 쓰려면 일단 써야 할 텐데 쓰질 않으니 잘 쓸 기회조차 없는 거야. P.189

그래도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하루에 한두 페이지씩 글을 매일 쓰다 보니 내가 매료되는 단어들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으며, 어떤 시간과 공간, 어떤 자세에서 글이 잘 써지는지도 알았다. 이제야 막 나의 화면에 새로운 캐릭터가 생성된 것 같았고, 초보자 마을에서 벗어나 작가로 전직한 것 같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나는 나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자부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조만간 작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멋있다는 말과 함께 내가 제일 도망치고 싶은 상황을 만들었다. “무슨 글을 쓰는데?” “그럼 쓴 글 좀 보여줘.”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당황한 모습을 감추며 멋쩍게 웃는다.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다음에 보여줄게” 이와 같은 대답을 반복하길 여러번,  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고 화가 났다. 그리곤 더 이상 나는 나의 꿈을 작가라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1년 동안 서평만 주구장창 썼다. 서평이라곤 하지만 지금 읽어보면 독후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가끔은 빈 노트에 나의 감정을 난잡하게 배설하기도 했고, 그걸 조금 다듬어 일기를 쓰기도 했고, 그걸 다시 다듬어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다듬어봐도 이것들을 글이라고 부를 순 없었다. 그저 나의 단편적인 생각을 텍스트로 옮겨놓은 단상(짧은 생각)일 뿐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솔직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탈탈 털어 보여 주는 것이 진짜일까. 아픈 것을 아프다, 힘든 것을 힘들다, 죽고 싶으니까 죽고 싶다, 이렇게 쓰는 것이 맞는 걸까? 이렇게만 쓰는 것이 옳은 걸까? P.86

요리사는 요리를 하고, 청소부는 청소를 하고, 바리스타는 커피를 만들고, 가수는 노래를 한다. 어떠한 직업을 갖기 위해선 그 직업이 마땅히 해야 할 행위가 있다. 작가는 글을 써야 한다. 아무리 작가가 되고 싶다 하더라도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를 순 없다. 노트북의 수많은 폴더를 뒤져봐도 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글이 하나도 나오지 않자 이런 생각이 났다. 나는 튜토리얼은커녕 작가라는 캐릭터를 생성도 하지 못했구나.

지금은 대학생이라는 칭호라도 있지만, 내년에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면 나는 아무런 정체성도 갖지 못한 존재가 되진 않을까? 인간도, 오크도, 요귀도, 마족도 아닌 그냥 지나가는 존재 1, 살아 숨 쉬는 생명체 3 정도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움이 밀려와 온몸이 떨렸다.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는 죽기보다 싫었다.


쓰기 역시 그렇다. 써지지 않는다고 계속 안 쓰면 곤란하다. 글은 원래 잘 안 써진다. 처음부터 잘 써졌던 날이 있던가. 쓰다 보면 잘 써지기도 하고 이런저런 문장 쓰다 보면 막혔던 것도 풀리고 새로운 생각도 떠오르는 거지. P.124


그래서 다시, 아니 처음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세상을 놀라게 할 작품을 쓰기 위함이나,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어 한강뷰의 아파트를 사기 위함이 아닌 오직 작가가 되기 위하여. 누군가 “당신은 무슨 사람이에요?”라고 물을 때 “저는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라고 말하기 위하여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그것도 그냥 작가가 아닌 ‘소설 작가’가 되기 위하여 빈 페이지의 화면을 바라본다.


두렵다. 막막하다. 희미하다. 걱정된다. 용기가 나질 않는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누군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저 사람보다 잘 쓸 자신이 없다. 내가 과연 쓸 수 있을까. 뭘 써야 하지. 뭐부터 해야 하는 거지. 소설의 3요소? 기승전결? 매력적인 인물은 어떻게 만들지. 독창적이면서도 익숙한 작품은 어떻게 쓰라는 거지? 나는 이 세상에 무슨 말을 내뱉고 싶은 거지? 소설 쓰기라는 말을 떠올렸을 때마다 이러한 감정과 질문이 나를 덮친다. 예상할 수 있는 고통과 고뇌임에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인간이 이렇게나 무력해질 수도 있구나. 1년 전과 똑같이 일정한 간격으로 커서만 깜빡일 뿐이다.


하지만 써야 한다.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아무리 개떡같은 글이라고 하더라도 써야 한다.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 내 손이 떨리고 있는 건 설레기 때문이 아니라 불안하기 때문이겠지. 가슴이 뛰는 이유는 드디어 글을 쓴다는 흥분이 아니라 이제는 제발 쓰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겠지.


그래도 쓰자.

쓰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는 작가님들의 말을 믿으며 그냥 써 보자.

“저는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아, 소설 작가요”라고 말하는 나를 상상하며 글자씩 써 보자.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십니까?
나는 소설을 씁니다.

심플하게 답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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