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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pr 25. 2024

죽고 싶다는 거짓말 『이반 일리치의 죽음』

[소설]『이반 일리치의 죽음』 - 레프 톨스토이

  

작년 봄 불현듯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옥상 벤치에 누워 있던 나는 아무런 의식 없이 눈을 감은 채 죽고 싶었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갑자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한 거지?’ 분명 아무런 일도 없었다. 삶이 힘들지도 않았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지도 않았다. 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순간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될 수 있으면 오래 살고 싶었다. 그런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음을 바라다니.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지금 생각 해봐도 소름이 끼친다.


우리가 평소에 쉽게 내뱉는 ‘죽고 싶다’는 말엔 몇 퍼센트의 진심이 들어가 있을까? 입 밖으로 꺼내면 정말 죽고 싶을 것 같아서 쉽게 말하는 편은 아니지만 주변 지인들은 종종 이 말을 내뱉곤 한다.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는 게 나은 듯’ ‘죽는 것보다 괴로워’ ‘아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 등. 그들은 언제나 죽상을 지으며 죽음을 희망하고 있었다. 아니, 죽고 싶은 만큼 괴로운 표정이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들은 그저 죽음보다 더 두려운 현실에서 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사는 게 너무 괴로워 죽음을 바라는 삶. 그러한 삶이 얼마나 괴로울지 생각해본다. 지금껏 자신이 살아왔던 삶에 대한 회의감, 자신의 죽음을 바라는 주변 사람들, 잠자리에 들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육체적 고통은 인간이 죽음을 바라기에 충분했다. 레프 톨스토이의 중편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등장한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필멸자의 초라한 인생

     

소설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돈과 명예, 권력을 모두 손에 쥔 인물이다. 부모의 바람에 따라 법학을 공부한 이반 일리치는 큰 어려움 없이 법학교를 졸업하고 10등 문관으로 임용된다. 임용 이후 비싼 양복을 맞추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사교활동을 즐기며, 상관에게 아첨하여 흔히 말하는 탄탄대로를 걷는다. 그는 이러한 행동이 마치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날벌레 같다는 것을 희미하게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삶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권력이 가져다주는 삶에 만족한다.


그는 어렸을 때나 커서나 아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날벌레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 이끌려 그들의 태도며 인생관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해 나갔다. P.28


그런 이반 일리치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간간이 찾아오던 옆구리의 통증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커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병은 점점 더 이반 일리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이러한 육체적 통증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기에 이른다. 사회의 최상위층에 속한 자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다며 이반 일리치는 좌절하고, 현실을 외면한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한없이 절망했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고 또 이해할 수도 없었다. P.75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권위적인 태도를 지우지 못한다.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상태에도 동료 판사와 의사 등의 권위자에겐 점잖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며 자신의 모습을 연기한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눈엔 한낱 초라한 환자로 보이겠지만, 이반 일리치는 무너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단 한 순간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무의미한 삶에 대한 회고

     

이반 일리치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자, 그는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그저 5,000루블을 위해서라면 뭐든 가능하다고 외쳤던 과거의 자신, 무심한 표정으로 서류를 처리하듯 흘겨봤던 재판장 안의 얼굴들, 그저 해야 할 일을 처리하듯 자신을 간병하는 아내의 모습,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승진을 기대하는 직장 동료들을 보며 이반 일리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가’ ‘나의 삶은 왜 이토록 초라한가’ ‘나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던 게 아니었을까?’ 죽음의 문 앞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반추한 것이다. 물론, 때는 이미 늦었다. 이반 일리치의 삶은 이제 나흘도 남지 않았다.


그간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거부당했다는 좌절감에 이반 일리치는 점차 미쳐간다. ‘죽음을 바라는 환청’과 ‘죽고 싶지 않아 하는 환청’ 중 어느 목소리가 진짜 자신의 바람인지 그는 알 수 없다. 그는 살고 싶음과 동시에 죽고 싶었다. 살고 싶지만 죽고 싶은 그가 죽음을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거짓’이었다. 그는 지금껏 거짓된 삶을 살아온 자신을 책망한다. 동시에 자신이 거짓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분노한다.

 

"필요한 게 뭐야? 필요한 게 도대체 뭐야?" 그는 되뇌었다. "도대체 뭐냐고? 시달리지 않는 것. 사는 것. 그는 스스로 답했다. (...) "도대체 지금 원하는 게 뭐야? 사는 것? 어떻게 살아?“ (...)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답은 찾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자주 그렇듯이 이 모든 게 그가 바른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자신이 기억하기로는 바르게 살아왔다고 믿고 그 생각을 즉시 떨쳐버렸다. P.106-109


죽고 싶다는 거짓말


모든 인간은 필히 죽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이반 일리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죽고 싶다는 말은 한낱 거짓에 불과하다. 거짓말쟁이 이반 일리치는 결국 초라하게 생을 마감한다.


"끝났습니다!" 누군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풀이했다. '죽음은 끝났어'라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그는 숨을 한차례 들이마셨다. 절반쯤 마시다 숨을 멈추고 긴장을 푼 후 숨을 거두었다. p.124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초월적인 인간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동시에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인간이 있다면 어떠한 삶을 살았을지 추측해 본다. 죽기 직전 자신의 삶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사람, 스스로 떳떳한 삶을 살았던 사람, 나를 포장하지 않고 꾸며내지 않은 채 자신을 사랑한 사람. 그런 사람은 적어도 이반 일리치처럼 ‘죽음’을 ‘죽기보다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죽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죽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가? 죽음 앞에서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오늘 당장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았는가?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작년 봄, 나에게 찾아온 죽음의 바람에 과연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책을 덮고 다짐한다.

더 이상 죽고 싶다는 거짓말로 나의 삶을 부정하지 않겠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진실되게 나의 삶을 살겠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미소 짓는 나의 모습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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