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크눌프』- 헤르만 헤세 (민음사,2004)
작가가 꿈이라고 말하면 제일 많이 듣는 질문 두 가지가 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그리고 작가는 누구인지. 누구보다 변덕이 심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라 책을 읽을 때마다 좋아하는 책과 작가가 달라지만 언제나 답은 똑같다. 내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만큼 좋았던 책은 없었어.
사람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내겐 터닝북이 있다. 주어진 삶의 무게라는 어른들의 말에 콧방귀를 내뿜었지만, 그 무게를 직접 들어 올릴 나이가 되어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시절. 누군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다가 이제 내가 나에게 무언가를 시켜야 할 상황을 마주했던 시절. 그때 헤세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나이만 가득 찬 어린아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헤세의 책 덕분에 나는 ‘주체적인 삶’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나의 길을 직접 그릴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이고, 내가 갈망하는 꿈은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삶은 어디에 있고, 그 삶을 위해 어떤 행복을 추구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정답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헤세의 책을 펼쳤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무의식의 그림자를 깨닫게 해주듯, 헤세 본인에게도 이를 깨닫게 해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다름 아닌 “크눌프”다. 안정된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고 자신만의 사랑과 삶에 대한 여정을 떠나는 크눌프는 분명 헤세 본인의 열망을 투영한 인물일 것이다.
선교사인 아버지와 자기중심적인 교육관의 어머니에게 자란 헤세는 언제나 자유를 갈망했다. 부모가 정해준 꿈과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저항으로 그는 소설을 썼고, 소설 같은 삶을 살길 원했다. 안정적인 직업과 가족 없이 세상을 여행하는 방랑자 같은 영혼의 소유자. 부모님조차도 빼앗을 수 없는 그의 영혼은 크눌프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그분들의 자식이고 자신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셔. 하지만 내가 그분들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에게 난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인간일 뿐이야. 내게 중요한 일이고 어쩌면 내 영혼 자체일지도 모르는 일들을 부모님들은 하찮게 여기시고, 그것이 내가 어리거나 변덕스러운 탓이라고 돌려버리시는 거야. 그러면서도 그분들은 나를 사랑 하시고 기꺼이 최고의 사랑을 베풀어 주시지. 아버지는 그의 자식에게 코와 두 눈과 심지어는 이성까지도 물려줄 수 있지만 영혼은 아니야. 영혼은 모든 사람들 속에 새롭게 존재하는 것이지」 P.80
자유에 대한 대가로 젊은 나이에 폐결핵을 앓게 된 크눌프는 신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 왜 그것들로부터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또 훌륭한 인간도 못 되었을까요?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신은 그를 가엾게 쳐다보며 아직도 깨닫지 못했냐는 듯 말한다.
“한탄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 그래, 넌 지금 신사가 되거나 기술자가 되어 아내와 아이를 갖고 저녁에는 주간지를 읽고 싶은 거냐? 넌 금세 다시 도망쳐 나와 숲속의 여우들 곁에서 자고 새 덫을 놓거나 도마뱀을 길들이고 있지 않을까?"
자유를 추구하는 영혼에게 영원한 자유는 축복일까? 안타깝지만 신이 아닌 인간인 이상 영원한 자유는 불행이다. 아무리 자유에서 행복을 느끼더라도 안정적이지 않은 삶과 예측 불가한 상황에서 인간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크눌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날 것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고,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음을 반성해도 그는 결국 떠날 것이다. 안정적인 삶에 곧잘 싫증 내고 아름다운 자연과 낯선 사람들로부터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삶이니까.
작중 그의 친구 로트푸스는 그를 보며 '매일매일이 일요일인 것처럼 산다'고 말했다. 헤세와 크눌프가 추구하는 주체적인 삶은 아마 어떤 것에도 속박받지 않는 일요일 같은 날의 지속일테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오랜 기간 쉬다 보면 어느새 출근하고 있는 직장인들로부터 부러움과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돈 많은 백수가 꿈이지만 막상 죽을 때까지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것임을.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헤세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낌과 동시에 동정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생을 주체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외로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의 삶을 동경하는 한, 그리고 작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나의 최애 도서와 작가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아니, 크눌프가 옳았다. 그는 자신의 천성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따라 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을 자신의 친구로 삼았으며, 모든 소녀들과 여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매일매일을 일요일처럼 살았다. 사람들은 그가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계속해서 살아가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