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린이 아닌 모든 것』中「절반 이상의 하루오」-이장욱(2016)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4월의 어느 날. 한강이 보이는 돌담에 앉아 생각했다. ‘아, 어디로든 좋으니 떠나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이유도, 멋있는 풍경을 보고 싶다는 이유도 없었다. 그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꽃샘추위처럼 갑작스레 찾아온 감정의 변화에 나는 핸드폰을 켜고 항공권 사이트에 들어갔다. 부산은 얼마 전에 다녀왔고, 제주도는 너무 뻔해. 그럼, 역시 일본인가? 휴대폰 액정에 뜬 ‘특가’라는 단어에 나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고객님의 예약이 확정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보자 그제서야 통장에 50만 원도 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 미친건가?
당장 일주일 뒤에 일본에 간다. 그것도 혼자. 게다가 지금은 학기 중이고, 벚꽃이 활짝 펴있는 걸 보니 중간고사 기간이 분명하다. 미쳤지, 미쳤어. 일주일 동안 미쳤다는 말과 걱정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하지? 돈도 없는데 가서 어떻게 돌아다니지? 아니, 돌아다닐 수나 있을까? 나 일본어라곤 고작 애니메이션에서 단어 몇 개 들은게 다인데, 큰일났다.
여행에 대한 설레는 마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려야 하지만, 분명 이 떨림은 두려움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훌쩍 떠나고 싶었던 거야? 이게 다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를 읽은 탓이다.
자국인 일본에선 심해어나 바다거북처럼 ‘죽은 듯이’ 시간을 보내지만 여행만 떠나면 싱싱한 물고기로 변해버리는 ‘하루오’. 그에게 있어 여행의 목적은 없다. 하루오에게 여행은 자신의 삶 그 자체이자, ‘절반 이상’의 모습이다.
그런 하루오를 바라보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여자친구는 묘한 끌림을 느낀다. 특히 파일럿을 꿈꿨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하게 된 주인공에게 하루오는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 그 자체일 것이다. 주인공은 토익책을 옆구리에 낀 채 추리닝 차림의 옛 모습을 떠올리며 하루오를 바라본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며 평범한 결혼생활을 꿈꾸는 지금의 내 모습은 과연 ‘절반 이상의 내 모습’일까?
주인공은 하루오를 동경하며 자신의 내면을 투사한다. 일상이 여행이고, 여행한 내용으로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하루오는 자신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건, 하루오를 제외한 모든 것이다.”라고 말한 하루오. 절반 이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하루오 역시 언제나 행복할 순 없나보다.
하루오의 첫 여행은 대한민국의 부산으로 떠난 ‘자살 여행’이었다. 그리고 부산 남포동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성의 ‘도를 믿으시나요?’라는 말에 기이하게 하루오의 자살충동이 사그라들었다. 자연스럽게 하루오의 일상은 여행으로 가득 찬다. 무의식의 발현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도를 믿게 된 걸까. 확실한 건 그때 이후로 하루오는 절반 이상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꿈을 죽이기도 한다’는 주인공의 말에 지금껏 내가 죽인 꿈들의 개수를 헤아려본다. 아이일 땐 50개쯤의 붓꽃, 학생일 땐 2백 개쯤의 붓꽃, 어른이 된 뒤엔 5백 개쯤의 붓꽃. 어쩌면 소설 속 주인공이 센 붓꽃의 개수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적’이라는 말에 숨을 거둔 ’절반 이상의 나’들이 한없이 안쓰럽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도서관 전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과거 주인공이 추리닝 차림에 토익책을 끼고 있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나 보다. 나도 주인공처럼 여행에서 아무 걱정 없이 웃는 하루오를 만나 ‘절반 이상의 나’를 찾고 싶었나 보다. 혼자 가는 여행이지만 곁에 하루오가 있다고 생각하며 돌아다닐 예정이다. 불안할 때마다 그에게 묻고, 확실하지 않을 때마다 그에게 격려받을 생각이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내 곁에 하루오가 영원히 존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