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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Mar 07. 2023

우리의 시간은 정말로 흐르고 있을까?

[과학]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서평 - 카를로 로벨리



매일 아침 전 세계 곳곳에서 알람이 울린다. 휴대폰 화면에는 다양한 숫자들이 찍히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한다. 보통 12시 정도가 되면 점심을 먹고, 오후 6시가 되면 퇴근을 준비한다. 주말이 다가오면 지인들을 만나거나 휴식을 취하며 각자의 휴일을 즐긴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월요일과 일상의 반복. 사계절의 반복과 1을 더해가는 연도를 우리는 당연하게 여긴다. 시간은 항상 앞으로 흘러갈 뿐이라고.


우리의 모든 일상은 "시간"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어제보다 하루 더 지났기 때문에 오늘을 맞이한 것이고, 1시간 뒤는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현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의 시간은 앞으로 흐르기만 하는 것일까? 책의 제목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보고 당연하다고 여긴 절대적 가치에 의문이 생겼다. 파격적인 책의 제목이 나의 궁금세포를 자극시킨다. 역시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머리에 물음표가 가득하기 때문인가 보다. 세상 당연한 진리에 의문을 던지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이탈리아 출신 세계적 이론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가 이 책을 썼다. '루프 양자역학 이론'을 만들어 냈으며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저명한 물리학자이다. 책은 약 200페이지 내외로 과학 이론과 더불어 철학적인 물음이 담겨 있고, 책의 중심 내용은 그의 분야인 양자 역학이론이 주를 이루지 않는다. "시간"의 개념에 대한 역사와 사견, 그리고 철학적 견해가 담겨 있는 과학철학책 이라고 분류하는 게 맞겠다. 우연히 발견한 집 근처 카페 사장님의 추천으로 책을 빌려 받았다. 사장님의 최애도서라고 한 만큼 한 껏 기대가 부푼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과학에 대해 일절 모르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시험에서 물리 8등급을 맞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 싶어 문과로 전향한 만큼 확실한 "과포자"이다. 과학 이론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원한다면 이 글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과학이론으로 부터 나온 철학적 물음에 집중해 이 책을 읽었으니 혹여나 기대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순도 100% 문돌이에게는 완독조차 어려운 책이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는 시간은 사실 연속된 '선'이 아니라 흩어진 '점'이다. - 서문


믿기 힘들겠지만 연속되고 흘러가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다는 게 카를로 로벨리의 주장이다. 시간이 연속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시간은 변화의 척도일 뿐이다'라는 상대적 시간 관점과 뉴턴의 '아무 변화가 없을 때도 흐르는 시간이 있다'는 절대적 시간 관점 둘 다 옳은 주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휜 시공간' 개념을 살펴보면 시공간이 뒤틀려 탄력적인 종이를 잡아당기면 거리가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것처럼 시간 역시 상대적으로 더 많거나 적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도가 높은 산보다 평지에서 더 적은 시간이 흐르고, 움직이는 물체는 정지해 있는 물체보다 더 짧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일이다. 다만 그 시간이 인간이 체감하기에는 굉장히 짧은 시간이라서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시간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간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


흰 시공간 예시


카를로 로벨리는 우주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금'과 '현재'의 개념 역시 존재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약 4광년 떨어져 있는 행성 'b'에 있는 여동생에게 '지금' 뭐 하고 있느냐고 묻고 4년 뒤에 돌아온 그 대답은 과연 '지금'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무 억지스럽다면 지구에서 예를 찾아도 좋다. 지구 반대편에서 살고 있는 사람만 하더라도 서로가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과 느낌이 다를 테니 말이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느끼는 순간 역시 1초가 지난 과거의 '사건'이고 '현재'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과거'의 생각으로 문장을 쓰고 있는 다른 '사건'이다. 즉, 모든 시간은 무수한 '점'들이 모여 있을 뿐. 그것은 절대 연속적으로 이어진 '선'이 아니며 시간이 연속적으로 흐른다는 관념을 파괴하는 증거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 p.105


저자는 기원후 1세기에 제작된 불교 경서의 내용 중 현자 나가세나와 밀린다 왕이 나눈 사례를 들며 사물과 실재에 대한 일반적 관념을 부정하려 한다. 왕이 나가세나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묻자 자신은 나가세나 이지만 나가세자는 그저 이름이고 호칭이고 표현이고 단순한 단어일 뿐이라고 한다. 왕은 자신의 주체를 부정하는 나가세나에게 자신의 눈에 보이는데 왜 그것을 부정하고 자신이 나가세나임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나가세나는 왕에게 마차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묻는다.


"저 바퀴들이 마차인가요? 차축이 마차인가요? 멍에가 마차인가요? 부품들의 집합이 마차인가요?" 


마차는 모든 바퀴와 차축, 멍에 등이 함께 모여 작동하는 관계망일 뿐이다. 마차와 마찬가지로 나가세나 역시 그의 머리카락, 손가락, 얼굴, 세포 등의 사건들이 모인 하나의 집합체일 뿐이다. 즉, 세상은 돌, 파도, 바람 등 하나의 사물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먼지가 쌓인 사건으로 인한 돌의 생성, 달의 인력으로 인한 파도의 생성, 바람의 움직이는 사건을 통해 생겨난 공기 등 모든 것이 전부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간 역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존재의의를 갖는 것이지 원래부터 시간이라는 것이 뚝딱 만들어져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어떻다는 건데?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시간은 흐르지 않다는 사실에 고개를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믿었던 세계를 완전히 부정하고 좌절하라는 말은 아니다. 과학적 사실이야 어쨌든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시간은 연속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1분을 60초로 규정하고 60분이 모여 1시간이 되고, 24시간이 지나면 하루가 지난다. 우리는 편의를 위해, 공동체 생활의 리듬을 위해 정한 이 사회적 약속은 굉장히 중요하다. 실재적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요소이니까 말이다. 저자는 "세상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한결같고 안정적인 연속된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세상을 그룹화하고 분류한다."(p.181)고 말한다. 세상과의 상호작용이 더 잘 이루어지기 위해 우리는 낮과 밤을 나누고 4계절을 나누어 그 규칙 속에서 안정감을 찾아가는 것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의 책 제목에서 우리는 의문과 함께 거부감을 느끼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허나 우리가 항상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치, 고정관념, 상식을 깨고 '과연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를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인류는 언제나 끝없는 의심과 부정으로 더욱더 큰 발전과 진실을 찾는다. 혹시 모르는 일이다. 100년 후에는 과거로 가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도 있으니 계속해서 이 세상을 의심해 보는 것도 재밌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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