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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Mar 15. 2023

정답 없는 예술을 푸는 방법

[예술]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서평 - 알랭 드 보통


예술에 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가끔 지인을 따라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곤 한다. 넓은 공간에 펼쳐진 감각적인 전시물들과 벽에 걸려있는 미술 작품들을 보며 관광객들은 생각에 잠기거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나도 그들을 따라 심오한 표정을 지어본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나의 머리에 스치듯 떠오른 단 하나의 문장. 


"음... 도대체 내 눈앞에 이건 뭘까?"


예술은 문학보다 더 어렵다. 아니 어쩌면 모든 분야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학문일 수도 있다. 작품 아래에 위치한 "작품 설명"이 없다면 눈앞의 작품이 슬픈 것인지, 행복한 것인지, 희망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그 반대의 것인지 본인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웃는 얼굴만 보고 희망 가득한 작품이라고 판단하면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다. 창작자나 전문가의 심오한 표정과 함께 '네가 예술에 대해 뭘 안다고?' 하는 눈빛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 돈 내고 작품을 감상하러 왔는데 예술에 문외한이라 혼나는 느낌은 뭐랄까. 참 씁쓸하면서도 위축되는 기분이다.


스위스의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쓴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에게는 유명한 작품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느낌이 훨씬 더 무서울 수 있다."(p.61) 틀린 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더욱이 그러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문제들에는 분명한 정답이 존재하고, 만약 그 정답에 반하는 답을 쓴다면 우리에게는 가차 없는 빨간색 빗금이 주어진다. 틀렸으니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풀으라는 것.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행동이지만 예술에선 그런 문제가 없다. 예술은 정답과 해설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문제집이니까.


때문에 예술계에 전문가가 있다는 사실이 참 애매하게 들린다. 한국에서 전문가라고 함은 유명한 기관에서 발급한 자격증, 혹은 상위 대학의 학사, 석사 자격증 정도일 테니까. 한국에서 예술가로 살기 위해서는 끝없이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해야 한다. 답 없는 문제에 스스로 정답을 만들고 해설을 끼워 맞춰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한국에서 예술가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품들은 존재한다. 유명래퍼 저스디스의 노래가사에서 그는 자신만의 예술적 철학을 랩으로 전달한다. 그의 가사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예술의 정답인 것처럼 자신 역시 래퍼로서 정답을 갖고 있는 예술가라고 자신을 칭한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가 니 취향이 아닌 게 어딨냐 … 예술엔 있지 정답 …

I Could Do Dead - Dbo (Feat. JUSTHIS) 中


다빈치의 모나리자, 뭉크의 절규, 고흐의 해바라기 등과 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품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작품이 "" 주목을 받았느냐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무엇을 훌륭한 예술로 간주하는가?'의 질문에서 우리는 기술적 해석, 정치적 해석, 역사적 해석, 충격가치 해석, 치유적 해석 등 다양한 측면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예술 작품이 인정받는 것은 단 한 가지의 정답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각적 측면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해석해 보았을 때 눈여겨 볼만한 것"이 존재했을 때이다.


또한, 예술은 단순한 감상의 영역을 넘어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부자들은 유명한 작품들을 "수집"하는데 목적을 두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집의 인테리어에 예술 작품을 더해 시각적으로 "과시"하는데 목적을 두기도 한다. 집 근처 카페, 일반인의 드로잉, 엄마의 인테리어, 오늘 입은 옷들 모두 현대사회에서는 예술이 될 수있다. 그 여파가 혼란스러울수도, 혁신적일 수도 있지만 예술에 입문하는 턱걸이가 낮아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단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바로 "주체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것." 이것은 말을 하는 것, 글을 쓰는 것, 삶을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고, 정답이 없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책상 앞에 앉아 수식에 맞는 수학 문제 풀기와는 정반대의 문제이다.


동그라미도 빗금도 없는 예술은 마치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 인생에 정해진 정답이 없듯이 예술에도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친밀하게 느껴진다. 내가 내린 정답 없는 문제를 푸는 방법. 즉, 예술에 대한 나의 정의는 "정답 없는 삶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연습 문제"이다. 스스로 작품을 평가해도 아무 문제없는 예술작품처럼 우리의 삶 역시 스스로 결정해도 아무 문제 없이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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