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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Mar 28. 2023

고집불통 우리 아빠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평소 모나지 않게 살자는 마음가짐 덕분에 나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여러 경험을 통해 상대방으로부터 미움받지 않는 방법을 터득한 나는 어느 무리에 섞이더라도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둥그런 성격의 소유자인 나라도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집이 센 사람이다. 웬만한 고집쟁이는 수없이 만나봐서 이제는 적당한 대처법을 알지만 황소고집 보다 더한 고집쟁이를 만나면 몸에서 힘이 주욱 빠진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일단 자기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우리 집 아빠도 그런 고집쟁이 중 한 사람이다.


언제부터 우리 아빠의 고집이 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본 아빠의 모습은 내가 태어난 이후의 모습뿐이니. 가끔 시골에 놀러 가 할머니께 옛날얘기를 듣는 것으로 아빠의 못 말리는 고집역사를 짐작해 볼 수 있었는데, 할머니의 빗자루 공격에도 끄떡없이 매일 오락실에 출근한 성실함과 중학교 시절 전교권의 성적을 유지했음에도 기어코 유도부에 들어가 할머니의 속을 볶았던 것을 보면 지금의 아빠를 단번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아빠의 고집은 한순간에 완성된 열매가 아니었구나. 아마 세월의 풍파를 직격타로 맞은 30대 초반부터 고집의 나이테는 더욱 짙어졌으리라.


70년대에 태어난 아버지들은 다 고집쟁이 었나보다. 아니,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어보니 그 위 세대에 견줄 만큼은 아닌 듯하다. 유교적 전통에 뿌리를 든 가부장적 사회가 당연한 이치로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작품의 시대적 상황은 아직 국가체제가 정립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시기이니 사상이라는 부가적 요소가 더해진다면 그 고집은 가히 내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고집이 센 우리 아빠라고 하더라도 웬만해선 할아버지의 고집은 꺾지 못하고 있으니 아빠도 분명 할아버지에 비해 고집이 약하다고 생각하겠지.


우리 아빠와 할아버지의 일상적 고집과 달리 소설 속 고집은 "사상"에 집중된다. 주인공 "아리"의 아버지는 "빨치산"으로 불리는 과거 비정규군의 생존자 중 한 명이며 아직까지도 "빨갱이"라는 단어로 사회에서 배척받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민주주의 국가를 이륙한 현재도 여전히 좌와 우로 나뉘어 박 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아직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은 시기에는 얼마나 그 다툼이 심했을까.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연을 끊었다는 사실이 21세기에 살고 있는 내겐 소설처럼 들린다. 물론 실제로 소설을 통해 상상한 것이지만 실제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제작된 소설이니 과거의 역사나 다름없겠다.


작은 아버지는 평생 형이라는 고삐에 묶인 소였다. 그 고삐가 풀렸다. 이제 작은아버지는 어떻게 살까?
 (p.41)


사상으로 가득한 고집쟁이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비록 이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했지만 그 주변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기엔 충분했다. 그의 딸인 "아리"는 사회주의자인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했으며 그의 동생(작중 작은 아버지)과 사촌내외 역시 가족 중 한 명이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버림받았다. 대의명분이 가득한 그의 행동이 나비효과가 되어 주변 사람들의 삶을 태풍처럼 휩쓴 것이다. 그런 미운 사람이 더 이상 세상에 남지 않게 되었으니 남은 사람들은 누구를 탓하며 하루를 살아갈까. 살아있을 때 더 잔소리를 하지 못한 게 그들의 남은 한일테다.


그러나 주변 모든 사람이 그를 미워하기만 한 건 아니었나 보다. 먼 시골임에도 그의 장례식장이 조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같은 사상을 가진 동료들이 대부분임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대한 마지막 평판은 그리 나쁘지 않다. 장례식장에 참석한 인물 대부분은 그에게 은혜를 입었거나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니 그럴 만도 하다.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p.137)라고 한 그의 말이 통했을까.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그의 죽음을 명예롭게 애도한다.


아버지는 낫을 휘둘러서는 아니 되었다. 밥값을 하라고 해서도 아니 되었다. 아버지가 해야 했던 것은 빨치산의 딸로 살게 해서 미안하다는 진정한 사과였다.
 (p.205)


그의 죽음에 삐딱한 시선을 던지는 이는 당연 그의 딸 "아리"이다. "오죽했으면 글겄냐"라는 말 한방이면 무엇이든 용납되고, "유물론자"라는 치트키를 사용해서 가족의 입을 꾹 닫게 하는 것. 그의 못 말리는 고집으로 인해 아리의 삶은 주체성을 상실했다. 세상은 혁명가라는 타이틀로 대의명분을 위해 인생을 바친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하지만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집중해야 하는 인물은 단연코 "아리"다. 중심의 이야기가 거대할수록 주변의 이야기는 그 그림자에 묻혀 잊힐 테니 우리는 계속해서 그 그림자를 걷어내야 한다.


신념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신념 말이다. 아직 신념이 확실하지 않은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깟 이상이 목숨보다 소중할까 싶지만, 누군가에게는 살아 숨 쉬는 것보다 중요한가 보다. 사회주의자인 그가 자신의 혈육보다 이데올로기를 택한 것처럼. 신념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신념이 강할수록 개인의 고집은 세진다. 그리고 그 고집이 과해지면 좋든 싫든 주변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우리 아빠가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처럼 말이다. 


가끔은 아빠의 고집이 약했으면 나 역시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조금 더 일찍 인정해 주었더라면, 안된다는 주장에 꼬리표라도 이유를 설명해 주었더라면. 물론 지금 와서야 아빠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만 아리가 어렸을 적 아버지를 원망했던 순간이 나의 학창 시절과 겹쳐 보여 조금 씁쓸할 뿐이다. 아리의 말대로 아빠는 아빠의 삶이 있고, 나는 나의 삶이 있으니 나도 이제는 조금 고집을 부려도 되지 않을까. 아무래도 고집은 우리 가족 내력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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