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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pr 11. 2023

불편한 진실

[소설] <꼬리와 파도> - 강석희

이제는 티비에서 만날 수 없는 개그프로 "개그콘서트"를 아시는가? 일요일 저녁,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으로 일주일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면 당신은 적어도 20대의 중반을 넘어설 나이일 것이다. 아무튼 나의 휴일을 책임졌던 개그콘서트에는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불편한 진실>이다. "왜 이러는 걸까요?"라는 유행어가 탄생한 이 코너는 생활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하지만 불편한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내어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코너는 사회에 대한 풍자적 성격이 강한 코너이다. 앞에서는 친절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자 쉬지 않고 뒷담화를 하거나, 은근하게 상대방을 내리까는 화법을 과장하여 표현하는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편한 진실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부끄러운 모습과 함께 웃음을 유발한다. 우리 사회에는 말하기 부끄러운 혹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들이 존재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이러한 진실들을 숨기기에 바쁘다. 마치 진실을 말하는 것이 범죄인 것처럼.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을 받은 강석희의 소설 <꼬리와 파도>에서 우리는 여전히 입 밖으로 꺼내기 두려운 "불편한 진실"들을 만날 수 있다. 작중 한 학생은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붙인 것만으로 "너 페미년이냐?"라는 학급친구들의 조롱을 받고,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처럼 성별 간의 갈등이 심한 때에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받기도 한다. 또한 이로 인해 사건이 커질 것 같자 학교 측에서는 최대한 조용히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듯 갈등을 최대한 숨기고 화목함을 흉내내는 것 이외에도 우리 사회에는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불편한 진실들이 존재한다. 교사가 특정 학생을 유별나게 차별하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권력을 이용해 사적인 관계로 이끌어 가는 것. 가정폭력을 쉬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회를 박탈당하는 부조리함. 왕따와 따돌림이 애들 장난으로 취급받는 학교. 이 외에도 사회에는 불편한 진실들이 차고 넘친다. 물론 ~강국, ~선진국, 살기 좋은 ~ 나라 등으로 감춰지기 일쑤지만. 


이 책을 읽고 성장소설상을 받은 작품의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독자가 불편한 진실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은 누군가는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할 문제들이고, 누군가는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할 주제들이다. 이러한 목소리들을 외면하고, 밝고 재밌는 내용으로 포장된 껍데기만을 통해 우리는 진심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겉은 화려하지만 부실공사로 인해 위태로운 건물을 밟고 우리는 안심하고 올라갈 수 있을까.


유독 남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하는 나라에서,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정답인 나라에서, 불편한 진실을 들춰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라에서, 우리의 옳은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아무도 비난하지 않으니 그저 남들처럼 못 본 척하고 지나가는 게 옳은 행동인가? 부조리함에 잠식되어 수긍하는 것이 옳은 태도인가?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사는 방법은 진실을 알아차려도 못 본 척하고 넘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나의 가슴을 울렁인다. 부끄러움과 죄책감, 배덕감 등이 한데 뭉친 그 감정은 뭐랄까. 마치 파도와 같다.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방대한 파도. 꼬리처럼 길게 이어진 울렁이는 파도. 온갖 감정이 뒤섞인 그 파도에 못이겨 나는 종종 꾹 감았던 눈을 뜬다. 듣고 싶지 않은 소음에 귀를 기울인다. 보지 않으려고 했던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바라보기 위하여. 누군가의 절규를 발견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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